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사고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그건 무서운 질문이었다.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사람들은 서로를 죽였다. 국민 절대 다수의 지지로 집권한 나치는 수백만 명의 시민들을 인종·장애·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학살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누군가가 마음만 먹으면 온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폐허의 먼지 위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이후로 원자폭탄이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데 쓰이는 일은 없었다. 대신 이후 그 폭탄 안에 들어 있던 힘은 우리 생활 가까이에 왔다. 세계 곳곳에 핵분열을 이용해 도시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원자력 발전소가 건립됐다.
구 소련의 프리피야트라는 마을에 있었던 체르노빌도 이들 중 하나였다. 1986년, 이 원자력 발전소의 노심[1]이 폭발한다. 이후는 역사에 기록된 참상이다.
HBO에서 이 사건을 주제로 5부작 미니시리즈를 제작했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출시되자마자 호평 속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체르노빌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라는 이야기만 듣고도 나는 흥미가 동했다. 그때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어떤 식으로 영상화되었는지도.
1986년 프리피야트의 한 가정집, 한 여자가 새벽에 물을 마시기 위해 잠자리에서 일어나 불이 꺼진 거실로 향한다. 그때 갑자기 굉음과 함께 집 전체가 잠깐 진동한다. 창문 밖으로 눈을 돌리자 먼 거리의 발전소에서 불길이 타오르는 것이 보인다. 마치 하늘에서 무언가가 내려오는 것처럼 푸른빛 섬광을 내뿜으면서.
소방관인 그녀의 남편은 소방서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그리고 아내에게 말한다. “발전소에 불이 났대.” 불꽃의 색깔이 이상하다며 걱정하는 그녀를 그는 별일이 아닐 것이라며 안심시키고 발전소로 출동한다.

발전소에서 근무하던 이들은 폭발 직후 이미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원자로 가까이에 있던 직원들이 하나둘 와서 노심이 폭발해 사라졌다고 이야기하지만 책임자 ‘댜틀로프’는 RBMK[2] 노심은 폭발하는 일이 없다며 사람들의 말을 부정한다. 그렇게 사건은 ‘작은 사고가 있었으나 잘 수습되고 있다’는 식으로 윗선에 전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