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外交’. 오로지 대화로만, 한 마디 할 때마다 어마어마한 국익이 오가니 그야말로 ‘무기 없는 전쟁’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외교를 어떻게 펼칠 것인지의 계획을 ‘전략’이라 부르는 것도 이러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역사적인 서희-소손녕의 외교 담판이 있은 지 1000여 년, 시대를 뛰어넘은 외교 천재는 그냥 탄생한 게 아니다. 이번 기회에서 간략하게나마 소개되는 고려 외교를 통해, 현재 우리나라의 외교 정세를 되돌아 볼 기회가 됐으면 한다.
우리나라 정치·경제는 주변 국가와의 관계 없이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위로는 중국과 연결되고, 아래로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일본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치 때문에 옛날부터 다른 나라와 영토를 둘러싼 분쟁이 잦았다. 하지만 늘 싸우기만 할 순 없는 법. 외교 정책이 매우 중요했다는 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고려의 외교는 주로 송, 요, 금 등 중국 대륙의 국가들이 중심이었다. 당시의 송, 요, 금은 민족이 달랐기 때문에 서로 독립된 나라였고 고려는 2국 이상을 동시에 상대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한 국가에 치중하지 않는 균형 외교는 필연적이었다.
고려 건국 전후로 중국 대륙의 정세는 매우 복잡했다. 10세기 초, 당의 멸망으로 동아시아의 중심지가 사라지면서, 중국 대륙이 엄청난 혼란 속에 빠져든 것이다. 단 50여 년 동안 수많은 국가가 나타나고 사라졌을 정도였다. 이런 이웃 나라의 상황 때문에, 태조 왕건은 건국 초기부터 호족들에게 들인 만큼의 공을 주변국의 관계에 쏟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최승로가 시무 28조[1]에서 ‘중국에 사신을 너무 보내어 고려의 국격이 낮아지는’ 것을 우려했을 정도였다. 이는 건국 초기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후백제를 견제하고 북진 정책을 통해 옛 고구려 영토를 되찾으려 하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