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헌법재판소 결정 20》을 참고, 정리했습니다.
이민관과 이서우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 사이로, 내년에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이들이 만약 몇십 년 전에 만났더라면 결혼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이민관과 이서우 두 사람 다 전주 이씨로 동성동본성과 본관이 다 같은 경우인데, 옛날에는 동성동본인 사람끼리 결혼할 수 없었다!
동성동본 금혼禁婚 조항은 같은 혈족이나 친척끼리 결혼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생겼다. 그런데 동성동본이면 정말로 친척 관계일까? 조선 말기 많은 사람이 다른 집안의 성씨를 돈을 주고 사서 썼다. 또한 성과 본이 없던 사람들도 1909년 민적법[1]이 시행되면서 임의로 성과 본을 받아 사용했다. 그러니 현대 한국에선 동성동본이라도 가까운 혈족 관계일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그래서 동성동본 간 결혼을 막는 법은 실효성이 없었다.
1997년 헌법재판소는 동성동본 금혼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05년 3월 2일에야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동성동본 금혼 제도는 완전히 사라졌다.
호주제는 호주戶主인 아버지를 주축으로 남성 자손이 가문을 잇도록 하는 제도이다. 장남이나 외동아들은 결혼을 해도 아버지의 가문에 남지만, 차남이나 딸은 결혼을 하면 새로운 가문에 들어가게 된다(차남은 결혼하면 자기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가문을 형성하고, 결혼한 여성은 남편의 가문에 들어간다). 부모가 이혼해서 자식이 어머니와 함께 살더라도 자녀는 여전히 아버지의 가문에 속한다. 또한 미혼모가 아이의 양육을 전담하며 자기 성을 물려줘도, 생부가 자식의 존재를 알게 되면 아이의 성은 자동적으로 아버지 성씨로 바뀐다!
호주제는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우리의 전통 풍습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일본의 관습이라 더욱 문제가 되었다. 사실 조선시대에는 여성이 가문의 연장자나 가장일 경우 여자가 호적을 대표하기도 했다여성 대표 호적은 조선 전체 호적의 11% 정도.
우리나라에 호주제를 도입시킨 일본은 양성평등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1974년 호주제를 폐지했다. 한국은 호주제가 폐지된 2008년까지 세계에서 유일한 호주제 시행 국가였다.
간통죄가 도입 취지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작용했단 사실을 아는지? 본래는 결혼제도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우면 부부 관계가 흔들릴 테니 처벌받기 싫으면 가정생활에 충실하라는 의도를 담았다. 그런데 간통죄로 배우자를 고소하려면 일단 먼저 이혼을 해야만 접수가 되었다. 게다가 배우자가 불륜 상대와 꼭 성관계를 해야만 죄를 물을 수 있었다! 이렇듯 간통죄에 해당하는 ‘간통’의 범위는 매우 좁았고, 이혼을 전제했기 때문에 원만한 결혼생활에 도움을 주기 힘들었다.
간통죄의 기원 역시 일제강점기 형법이다. 그 시절에는 “유부有夫의 부婦가 간통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하여 아내만을 처벌했다. 이후 1953년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될 때 남편과 아내 모두 간통죄 적용 대상이 되었다. 시대가 변하며, 부부간 윤리적 문제에 속하는 간통을 국가가 처벌할 수 있는지 논란이 일었다. 간통죄의 실효성과 존재 이유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아졌고, 폐지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에 걸쳐 일어났으나1989년, 1992년, 1995년 간통죄가 남아있길 바라는 여론이 강해 존속되었다.
2015년 2월 헌법재판소는 오랜 논의 끝에 간통죄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간통죄 논란은 사생활과 가정 보호와 관련해 수많은 담론을 이끌어 냈다. 한편으로는 법적인 처벌 근거가 없으니 바람을 피운 배우자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워졌다며 다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친구에게 비싼 선물을 해줘도 될까요?” “교수님을 찾아뵙는데 음료수를 들고 가면 처벌받나요?” 바야흐로 2016년, 선물을 주고받을 때마다 자기가 법을 어긴 건 아닐지 불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김영란법이 막 시행된 해였기 때문이다!
대법관이자 국민권익위원장으로 활동한 김영란이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3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이른바 김영란법)을 발의한 계기는 2010년대 초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스폰서 검사·벤츠 검사 사건이다. 각종 비리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이 생기며 김영란법이 발의됐다. 주 내용은 부정청탁을 금지하고 무분별하게 금품을 주고받은 행위를 제한하는 것으로, 공직자에게 접대 가능한 음식은 3만 원 이내, 선물 비용은 5만 원 이내로 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한국 공직 사회의 뇌물 문제는 잘 해결됐을까? 안타깝게도 비교적 작은 규모의 부패·청탁은 줄어들었지만, 고위직 공무원의 금품 수수는 오히려 증가했고2015년 482건→2019년 810건, 뇌물 금액도 커졌다2015년 건당 평균 4000만 원→2019년 건당 평균 9000만 원. 부정청탁을 막는 법이 제정됐다고 부패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헌법을 이해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사회적 변화는 꿈꿀 수 없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헌법에 명시된 시기는 무려 1776년으로, 미국 펜실베니아 주는 “집총執摠을 하는 것에 양심적 가책을 느끼는 사람이 대체복무를 하려 한다면 집총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는 조항을 제정했다. 1차 세계대전1914~1918을 거치며 유럽에서는 정치적·도덕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이 늘었고, 1916년 영국을 시작으로 1917년 덴마크, 1922년 네덜란드와 노르웨이 등 여러 나라가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오랫동안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2013년 UN인권이사회는 우리나라에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양심이나 종교적 신념 때문에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에게 대체복무 대신 형사 처벌을 내리는 것은 민주적인 조치가 아니라는 논지였다. 이윽고 2016년 국내 최초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무죄를 선고받으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군사시설이 아닌 다른 사회기관에서 36개월간 복무하게 되었다.
개인의 양심에 따라 군에서 복무하지 않고 다른 사회제도에 이바지해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우리 헌법재판소는 앞의 질문에 대해 시대별로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이러한 변화는 무엇을 의미할지, 한번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