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8일, 췌장암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를 추모하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수천 명의 사람이 거리로 나왔다. 사람들은 그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노래를 부르며 행진했다. 대통령도 유명 연예인도 아닌 대법관을 추모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거리에 모이다니,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다큐멘터리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를 보면 왜 그들이 긴즈버그를 존경했는지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기본권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일생을 바친 그의 삶을 같이 살펴보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하면 화려한 레이스 장식이 달린 법복을 입은 대법관 긴즈버그의 모습부터 떠오르지만, 긴즈버그의 활약은 대법원에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시작됐다. 긴즈버그는 암 투병 중인 남편을 간호하고, 남편의 공부를 돕고, 어린 딸을 돌보는 와중에도 높은 성적을 유지한 수재였다. 하버드 법대에서도 뛰어난 학생들만 참여할 수 있다는 학술지 ‘하버드 로 리뷰’의 편집자였고, 콜롬비아 법대 박사 수료 과정을 공동 수석으로 졸업했다. 누가 봐도 당장 채용해야 할 인재였지만, 당시 뉴욕의 어느 로펌도 긴즈버그를 뽑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긴즈버그가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도 미국 헌법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명시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임신했다는 이유로 여성을 해고해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여성에게 남편의 서명을 요구하는 것은 은행의 법적 권리였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긴즈버그는 로펌 취직을 포기하고 대학의 교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