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스크린에 걸리자 새로움이 가득한 상상력에 영화계 안팎에서 찬탄이 쏟아졌다. SF영화다운 기발한 스토리와 화면에 가상현실과 현실에 대한 철학적 담론마저 얹어져 가히 ‘영화계의 혁명’을 일으킨 것. 이후 꽤 오랫동안 출판문화계에 ‘매트릭스’라는 키워드를 장착한 문화상품이 진열되었다.
영화의 배경은 2199년. 세상은 인공지능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 인간은 이 AI의 생명연장을 위한 에너지로 쓰이고, 사람의 뇌에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을 입력, 사람들은 평생 ‘1999년의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매트릭스 밖의 현실을 만난 네오는 모피어스와 함께 이 매트릭스의 허상을 깨고 인공지능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싸움을 벌인다. 20세기 말 영화 <매트릭스>의 줄거리다.
<매트릭스>가 등장하고 지나온 시간은 고작 15,6년 남짓이지만 그동안 세상은 경천동지[1]할 만큼 변해버렸다. 워쇼스키 형제가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하던 당시에는 아날로그 컴퓨터 시절이었고, 당시의 모니터 화면이 녹색이라 영화의 전체적인 배경 색깔이 녹색빛을 띨 만큼 컴퓨터 역사로 보면 석기시대에 버금가는 터. 얼리어답터나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아니면 컴퓨터와 네트워크의 위력을 일반인들이 알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따라서 ‘매트릭스’ 세상은 앞으로 펼쳐질 세상, 혹은 먼 미래로 안내해주는 별빛 같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늘 ‘in Networking’ 상태. 손 안에 든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기기를 통해 거의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네트워크 안에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눈으로 <매트릭스>를 다시 본다면, 그 새로움은 조금 무색해진다고나 할까. 현실세계의 인공지능 연구는 이미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은 상태다. 지적 활동은 물론, 감정 활동 등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그은 선까지 넘나들고 있으므로. 그래서 2014년 스크린에 오른 <트랜센던스>는 엄연한 SF 영화지만, 영화가 제기한 무수한 얘기들이 훨씬 피부에 와 닿는다. 물론 여전히 인간의 뇌를 기계에 ‘업로드’한다는 것은 공상의 영역에 있긴 하지만, 그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트랜센던스>는 인간의 뇌를 기계에 업로드하게 되었을 때 생겨날 여러 가지 문제를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천재과학자 윌은 아내와 함께 인공지능을 연구 중이다. 자신이 개발한 인공지능 핀이 인류가 집대성한 지식을 뛰어넘는 초월적 존재로 만드는 게 목표로, 인공지능에 자각능력까지 갖춘 슈퍼컴퓨터 트랜센던스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윌은 ‘인공지능은 인류를 향한 인위적 혐오이자 위협’이라고 주장하는 반(反)과학 단체 리프트로부터 공격을 당한다. 그의 몸에 박힌 총알에 방사능이 묻어 있어 길어야 5주밖에 살지 못하는 몸이 되고 만다. 윌도 윌이지만, 연구소를 비롯한 모든 것이 이들 단체의 공격으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인공지능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는 오로지 윌에게만 남아 있는 상태.
윌의 아내 에블린은 윌을 되살리고 인공지능 연구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윌이 숨겨두었던 인공지능 핀에 윌의 기억을 업로드하는 것. 에블린은 핀을 가동 중단한 뒤 코어 몇 개를 빼내 윌의 뇌와 연결한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도 없다가 몇 달 후 컴퓨터 창에 메시지가 뜬다. ‘거기 누구 있어? 내 말 들려?’ 업로드가 성공한 것이다!
인간 윌과 인공지능 핀의 결합. 과연 깨어난 이 존재는 누구일까, 윌일까, 아니면 핀일까?
<매트릭스>를 볼 때만 해도 도무지 인간의 뇌를 컴퓨터 네트워크에 업로딩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상상의 세계라고 생각했지만, 레이 커즈와일은 이것은 미래가 아닌, 코앞에 닥친 인류의 현실이라 말한다. 무어의 법칙[2]에 따라 지금과 같은 속도로 인공지능이 발달한다면 2030년경이면 인간 두뇌를 기계에 업로딩하는 게 가능하다고. ‘겨우’ 15년 후의 일이지만, 그동안의 변화를 보면 15년으로 충분한 시간일 수 있을 것 같다. <매트릭스>에서 <트랜센던스>까지의 15년 동안 변모한 우리 현실을 참고하면 말이다.
이 영화의 두 번째 물음은 핀을 만난 윌이 슈퍼컴퓨터가 되려 한다는 것이다. 윌+핀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보다 인류를 가장 두렵게 하는 질문인 셈이다. 비록 육체는 죽었지만 뇌는 살아 엄청난 지적능력과 자각능력을 갖춘 슈퍼컴퓨터가 된 윌. 그의 행보는 가히 초월적이다. 앉은뱅이를 일어나게 하고, 장님의 눈을 뜨게 하는. 예수의 기적을 행하는 존재다. 윌은 리프트의 눈을 피해 새 보금자리를 삼아 초월적 존재로 군림하는데, 이 초월적 존재는 당연히 전 인류, 전 세계를 장악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가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테러단체 리프트만이 아니다. 함께 연구를 진행했던 동료 맥스도, 스승도, 미국 정부도 윌이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 판단한다. 그리고 이들은 인류를 위해 윌을 붕괴시켜야 한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며, 인간의 감성을 지닌 윌은, 이 시도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할처럼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 인간을 공격하려 할까?
아쉽게도 <트랜센던스>는 흥행도 그리 잘 되지 않았고, 혹평을 꽤 받았다. 이야기의 얼개가 엉성하고, 영화적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납득시킬 만한 개연성[3]도 미비하다는 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수많은 질문들을 떠오르게 하는 힘을 가졌다. 그 이유는 이 영화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이 먼 미래, 있을 수 없는 공상이 아닌 까닭이다.
과학은 지칠 줄 모르는 지적 추구라는 욕망을 품고 있다. 여기에 더해 우리는 과학의 힘을 빌어 진화한 세상을 꿈꾼다. 문제는 과학의 욕망과 인간의 욕망이 합쳐졌을 때 금기의 영역을 서슴지 않고 넘어서게 된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인공지능은 이미 경사진 비탈길을 내려가고 있다. 이 가속도는 인류를 어떤 미래로 끌고 갈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기술의 속도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인간의 철학, 인간의 사고다. 과학기술이 인문학을 만나야 하는 바로 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