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득이라는 가난한 이발사가 있다. 어머니는 10년째 치매로 누워 있고 노름꾼 동생은 걸핏하면 돈을 내놓으라고 형을 협박한다. 가난한 현실을 견디다 못해 그는 드디어 미쳐버린다. 정신분열증에 걸린 것이다. 주위의 도움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조만득 씨. 병원을 그의 회사로 생각한다. 주치의가 건강을 돌보고 하얀 제복을 입은 비서가 시중을 드는 환상 속에서 그는 행복하다. 그런데 한 뛰어난 의사가 차근차근 그를 치료하여 조만득은 마침내 정상인으로 퇴원한다. 퇴원 후 집에 오니 상황은 더 나빠져 있다. 가난한 살림, 치매 걸린 어머니, 행패부리는 동생, 가출한 아내. 그는 다시 미쳐야 할까? 결말은 이렇다. “그는 자신이 다시 미쳐버린 대신 그의 앓아누운 어머니와 말썽쟁이 아우를 어느 날 밤 차례로 목을 눌러 죽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길로 곧 경찰서로 달려가 자신의 범행을 자백한 것이다.”_이청준의 소설 <조만득씨>, 2007 건국대 정시 논술문제
이 소설이 영화화된 적이 있다. 여러분이 감독이라면 주연으로 누구를 캐스팅하겠는가? 능력 없는 찌질이가 떠오르는가? 놀라지 마시라. 주연은 무려 ‘현빈’. 흥행 성적은? 상상에 맡기겠다.
이 논술문제에는 여러 가지 질문이 들어 있다. 조만득 씨는 계속 미쳐 있는 게 더 행복했을까? 그 행복은 가짜 행복일까? 행복에도 진짜, 가짜가 있는가? 그를 고친 의사는 잘못한 것일까? 도대체 행복이란 뭐지?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파랑새를 찾아나서는 동화를 읽어보았을 것이다.(원작은 희곡이며 주인공 남매 이름도 틸틸과 미틸이 옳다.)
온갖 모험을 하며 파랑새를 찾다가 집에 와 보니 새장 속 새의 색깔이 파랗더라는 얘기. 행복은 가까이 있다는 뭐 그런 얘기. 여기에서는 소유하는 행복, 먹고 마시는 행복을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가짜 행복으로 본다.(치르치르라는 치킨 상표가 있다!) 진짜 행복은 건강, 자연 속의 삶, 가족애 등이라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가난한 틸틸에게 작가는 요정의 입을 빌어 말한다. “틸틸! 너희 집은 문이랑 창문이 터질 정도로 행복으로 가득 차 있어!”
사실 이런 생각은 뿌리가 깊다. 돈벌이만 추구하고 몸이 원하는 것만을 충족시키는 것을 천하게 보는 것이다. “범사(凡事)에 감사하라”는 종교의 가르침도,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동양적 처세도 ‘현실 긍정’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며, 이 뿌리는 정신적 만족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지식의 모든 분야를 개척한 사람’으로 칭송받는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인간의 고유한 기능이 덕에 따라 탁월하게 발휘되는 영혼의 활동’이라고 보았다. 좀 어려운 표현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행복을 물질적 만족보다는 정신적 만족으로 본 것은 확실하다. 맹자의 군자삼락(君子三樂)에도 물질적 만족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부자를 악당으로 보는 시선도 동서양에 넘쳐난다. 스크루지, 샤일록, 놀부 같은 이들은 오명(汚名)의 대명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