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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계란으로 바위치는 일상 속 영웅 이야기

1995년, 회사를 상대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시도한 상고 출신 삼총사. 그들은 해고 위험을 무릅쓰고 삼진그룹의 비리를 파헤쳐 나간다.
커피 타기와 담배 심부름 대신, ‘진짜 일’을 하는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은 이들의 탐정 수사를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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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삼진그룹에는 상고 출신 말단 여직원 삼총사가 있다. ‘대기업 부심’을 갖고 일하는 자영, 갖가지 돌직구로 사사건건 초를 치는 새침한 유나, 어리바리하지만 사실 수학 올림피아드 우승자 출신인 보람. 삼총사는 ‘커리어우먼’이 되길 꿈꾸지만 회사는 이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 입사 후 젊음을 다 바쳐 일한지도 어언 8년이지만 퇴직금 액수는 대졸 사원의 반토막 수준. 이들은 각 부서를 실질적으로 굴리는 유능한 인재지만 사무실 청소, 커피 타기 등 온갖 심부름과 영수증 빵꾸 메꾸기를 주 업무로 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삼총사는 토익 600점을 넘기면 승진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소식에 ‘진짜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사내 토익반에서 함께 공부를 시작한다.

그러던 중, 여느 때처럼 상사 업무(라고 하기엔 역시 뒤치다꺼리다)를 돕던 자영은 회사 공장에서 폐수를 방류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라고 판단한 자영은 관련 문서를 작성하지만 말단 직원에게 보고서 제출 권한이 있을 리가. 궁여지책으로 자신보다 먼저 승진해 대리가 된 후배에게 보고서를 쥐어준다. 회사는 보고서를 검토한 후, 방출한 폐수에 섞인 유해 물질 페놀이 기준치 이하라 인근 마을 주민들은 안전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우리 회사가 거짓말할 리가 없지.’ 자영은 마음 놓고 공장 근처 마을을 찾았으나, 동네에는 원인 모를 붉은 반점이 몸에 가득한 사람과 죽은 동물이 즐비하다. 삼총사 중 ‘오지랖’ 담당이기도 한 자영은 찜찜함을 지우지 못하고 결국 친구들과 폐수 방류를 지시한 사내 범인을 찾아 나선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하 삼토반)>은 일자리를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비밀스레 감춰진 회사 비리를 파헤치는 삼총사의 좌충우돌 추리·수사 과정을 비춘다.

레트로 감성 충만 ‘빨간 유니폼’, 예쁘기만 하면 다일까

<삼토반>의 주인공 여성 인물 셋은 삼진그룹의 말단 사원들이다. 삼총사가 입은 유니폼은 그들을 지칭하는 ‘여직원’이라는 단어처럼 유표적(​有標的​)이다. 예쁘고 단정해 보기 좋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입은 빨간 치마와 조끼는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불편할 뿐만 아니라 삼진그룹 사원이라면 삼총사 개인이 누군지 모르더라도 ‘상고 나온 여직원’이라는 사실만은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만든다. 일종의 낙인이다. 한 명의 직원 혹은 사람보다는, 시시콜콜하고 귀찮은 일을 말끔히 해결해주는 ‘도구’로서 삼총사를 인식하게 하는 구조적 낙인. 일반 직원들과 유니폼으로 구별된 이들은 이름은 물론 직급으로도 호명되지 못하고 ‘아가씨’로 지칭되기에 이른다.

이렇듯 회사 내에서 가장 힘이 약한, 또 억압당하는 여성들이 연대를 통해 내부고발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 <삼토반>은 여성 서사로도 읽을 수 있다. 주축이 되는 세 인물이 다양한 개성을 가진 다른 여성 캐릭터들과 연대하고, 이들이 당하는 차별을 구체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실제로 삼총사를 연기한 배우들은 캐릭터 해석과 구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입체적이고 매력 넘치는 여성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