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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이야기꾼, 전기수

17세기 조선의 청중을 쥐락펴락하다

유튜브에는 연예인 못지않은 다양한 재주를 가진 유튜버들이 인기몰이 중이야.
조선 시대에도 이와 비슷하게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고 돈을 버는 직업이 있었어. 
조선 후기의 소설 붐과 함께 새롭게 등장한 신종 직업, 전기수가 그들이야.  
이들은 소설 해설은 물론 1인 다역으로 극중 인물 연기를 해가며 까지 청중의 심금을 울렸어. 연기가 어찌나 실감났던지 결국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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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수 살해 사건을 온라인 신문기사처럼 재구성해보았다. 


‘네가 김자점이냐’ 소설 과몰입에 다짜고짜 전기수 살해  


작성시간 : 1790년 8월 10일 오후 8:44 
10일 한양 종로의 모 담배 가게 앞에서 인기 소설을 낭독하던 전기수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10일 낮, 피해자 전기수 ㄱ씨는 인기 고전소설 《임경업전》을 낭독하고 있었다. 임경업이 역적 김자점의 모함으로 목숨을 잃는 부분을 외우던 중, 갑자기 청중 ㄴ씨가 흥분한 표정으로 일어나 ㄱ씨에게 “네가 역적 김자점이냐?”라고 외쳤다. ㄴ씨는 담뱃잎 써는 칼로 ㄱ씨를 여러 차례 찔렀다. ㄱ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ㄴ씨는 행인들의 신고로 곧 인근 관아에 체포되었다. 
대낮에 많은 청중이 보는 앞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은 백성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최근 과열된 소설 열풍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한양도성 내 책 대여점만 2000여 곳. 전기수 역시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각광받고 있다. 거리 하나당 전기수 한 명씩은 볼 수 있으며, 그 앞에는 청중들이 구름처럼 몰린다. 이들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수익을 얻기도 하는데, 개인별 차이는 있지만 생계 걱정은 덜 수 있다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대우가 좋아졌다는 게 전기수들의 말이다.
하지만 소설에 빠져드는 세태를 경계하는 시선도 만만치 않다. 사대부 계층은 소설 열풍에 대해 ‘황당한 이야기로 사람들의 정신을 흐려놓고 본분을 잊게 만든다’며 비판적인 입장이다. 정조 임금 역시 이번 사건으로 소설은 물론, 조정 대신들의 문체에 대한 단속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신종 직업 전기수, 그들의 얘기에 혼이 쏙 빠지다

17세기 전후해서 조선에는 소설책 열풍이 불기 시작했어. 중국에서 들여온 《삼국지》 《수호전》 《서유기》 등 통속소설이 우리말로 번역돼 널리 읽혔지. 뒤이어 김만중의 《사씨남정기》 《구운몽》 등 한글 소설도 속속 창작되기 시작했어. 수요가 늘자 관련 직업도 하나둘 생겨났어. 집집마다 책을 방문 판매하는 ‘책쾌’나, 책 대여 전문점 세책방이 늘어났지.

이 무렵 종로 6가부터 보신각 등 번화가에 맛깔나게 소설 속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들이 등장했어. 두루마기에 정자관[1]을 쓴, 선비 차림새였어. 한 손에는 소설책, 다른 손에는 부채를 펴보이며 신이 나서 손짓을 하며 이야기를 들려줘 행인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지. 사람들은 이 이야기꾼을 ‘기이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노인’이란 뜻의 ‘전기수(전할 傳, 기이할 奇, 늙은이 叟)'라 불렀어. 

당시에는 책은 접하는 게 쉽지 않았어. 책값도 비싼 데다 책을 읽으려면 글을 알아야 했는데 문맹이 많았거든. 그러니 일반 백성들로서는 든는 쪽이 편했지. 이미 알고 있는 얘기여도 전기수가 들려주는 게 훨씬 재밌었어. 전기수는 단순히 책을 읽기만 하는 게 아니었고, 책 내용을 외워서 해설을 해주는 건 기본이고, 목소리와 억양을 바꿔가며 극 중 인물들을 혼자서 연기했지. 그야말로 시각적, 청각적 요소가 결합한 일종의 예술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