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불복종은, 어떤 법률이나 정책이 양심에 맞지 않고 정의롭지 않다는 판단이 들 때 이에 복종하지 않는(불복종) 저항 행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낸 세금이 정의롭지 못한 침략전쟁에 쓰인다고 판단할 때, 거부 의사를 밝히고 납세거부운동을 벌이는 것과 같은 행위다.
‘시민불복종’은 1848년 소로의 강연에서 비롯된 용어다. 소로의 《시민불복종》은 노예제 폐지운동을 위해 쓴 에세이 중 하나로, 발표 당시에는 ‘시민정부에 대한 저항’이라는 제목이었다. 소로 자신은 ‘시민불복종’이란 말을 직접 쓰지 않았지만, 그의 책은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이라는 새로운 영어 표현을 추가한 몇 안 되는 저작으로 꼽힌다.
시민불복종의 이론적 기틀은 키케로, 토마스 아퀴나스, 존 로크 등 서구철학자들이 마련해두었는데, 소로가 이를 현실화했다. 소로는 미국의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며 인두세 납부를 거부해 감옥에 다녀온 후 《시민불복종》을 집필했다. 그에 따르면 양심과 도덕이 국가의 법보다 더 우위에 있으며, 국민의 뜻에 따라 세운 시민 정부라 하더라도 그 행위가 인간의 양심에 배치될 경우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며 시민불복종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의 사상은 후에 간디의 불복종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소로의 《시민불복종》 발췌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유일한 의무는, 어느 때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혁명의 권리를 인정한다. 정부의 폭정이나 무능이 너무나 심각하고 참을 수 없을 때 정부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고 저항할 수 있는 권리 말이다.”
“당신의 표를 모조리 던져라. 종이쪽지 한 장이 아니라 당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져라. 다수의 뜻에 고분고분 따르는 한 소수는 무력하다. 아니 소수라는 이름조차 과분하다. 그러나 소수가 온 힘을 다해 가로막으면 그 힘은 불가항력이 된다.”
소로의 《시민불복종》은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래서 소로는 흔히 무정부주의자라는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소로는 이 말자체가 이상적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소로는 모든 기계에 마찰이 있듯 정부의 행동에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마찰이 기계 자체를 삼켜 억압과 강탈을 자행할 때는 혁명의 권리를 발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로는 국민을 노예 취급하며 지배하는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 소로가 말하는 시민불복종은 무정부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회복하는 길이다.
또 하나. 간디는 소로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소로가 평화적 불복종을 주장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 또한 소로에 대한 대표적 오해다. 소로는 정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폭력의 사용을 배제하지 않는다. “양심이 상처를 입을 때도 일종의 피가 흐른다고 할 수 있다”는 소로의 말은 평화적 방법이냐, 폭력적인 방법이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로 소로는 노예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연방 무기고를 무장 공격한 존 브라운을 옹호하는 ‘존 브라운 대장을 위한 호소’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간디는 진리를 믿는 주장의 순수함을 보여주기 위해 법의 처벌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소로는 부당한 정부가 개인을 가둘 수 있는 권한은 애초에 없다며 국가의 권위를 송두리째 부정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롤스는 시민불복종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나 법률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려는 의도를 가지고 법에 반대해서 행해지는 공적이고 비폭력적이며 양심적인 행위.’ 롤스는 시민불복종이 정당화되려면 다음과 같은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정리했다. 첫째, 국가의 행위가 중대하고도 명백하게 정의를 위반했을 경우여야 하고, 둘째, 법적인 절차에 따라 시정을 요구했지만 시정되지 않을 경우여야 하며, 셋째 비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롤스는 시민불복종이란 현행법을 어기는 것이므로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한편 시민불복종은 저항권과 관련이 깊지만, 둘은 어느 정도 구분되기도 한다. 시민불복종은 현재 체제를 인정하면서 정의롭지 못한 개별 법률과 정책을 시정할 것을 요구한다. 반면에 저항권은 권력 자체를 몰아내기 위한 근본적인 혁명에 가깝다. 저항권은 일반적으로 국가와 법이 국민 주권의 원칙을 부인하고 군사력을 동원하는 등 강제적으로 권력을 장악할 때 나타난다.

간디가 영국의 식민지 통치에 저항하기 위해 펼쳤던 불복종운동이 가장 잘 알려진 사례다. 1930년 간디는 78명의 추종자와 함께 해안 도시 단디를 향해 길을 떠났다. 소금을 생산하기 위한 것. 당시 영국은 식민지 인도에서 소금을 생산하고 판매할 수 없도록 금지했고, 소금 생산을 영국의 전매사업으로 지정한 다음 인도인에게 과다한 세금을 물리는 소금법을 시행했다. 이에 간디는 영국에 세금을 내지 않고 직접 소금을 생산하자는 불복종 운동을 펼쳤다.(소금법 위반으로 6만명의 인도인과 간디가 투옥되었다.)
이밖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인권 운동도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에는 버스에 백인 전용 좌석을 두도록 법률로 명시해 두었다. 이에 킹 목사는 인종차별적 법률을 지킬 수 없다며 ‘버스 안 타기 운동’을 벌였다. 이 시민불복종 운동은 결국 인종차별법을 폐지하도록 만들었다. 이밖에도 베트남 파병을 반대해서 벌인 징병 거부 운동, 여성의 참정권 획득을 위한 미국과 영국의 시민운동,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 분리 정책에 대한 반대 운동, 1980년대 우리나라 방송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 등이 불복종 운동에 속한다.
최근에는 정부의 정책이나 법률과 무관하지만 기업의 비윤리적 구조나 행동의 개선을 촉구하는 불복종 운동이 벌어지곤 하는데, 이 역시 시민불복종의 일환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한국 사회에 시민불복종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것은 1960년대였지만, 당시에는 반공법, 국가보안법, 집시법 등 시민의 기본권이 제한되고 ‘긴급조치’ 같은 초헌법적 조치가 난무하던 시절이라 실제로 시민불복종 운동을 벌이기 불가능했다. 최초의 시민불복종 운동은 1986년에 벌어졌던 KBS 시청료거부운동이었다. 농촌 실상에 대한 KBS의 왜곡보도에 분노한 전라도 완주군의 한 농민이 시작한 운동이다. 시청료납부거부 운동은 방송민주화와 공정보도라는 사회정의와 공공성을 내세웠고, 언론기본법의 폐지, 방송법의 제정, 한국방송공사법의 개정이라는 성과를 거뒀다는 점에서 최초의 시민불복종으로 평가된다.
1999년에는 분당 주민들이 고속도로 통행료납부거부 운동을 벌였고, 2000년에는 총선시민연대가 부적절한 후보자 낙천낙선운동을 벌였다. 후보자 낙선 운동은 불법선거운동에 해당했지만 비리 후보자를 가려내고 정당의 일방적 공천을 경고하는 의미로 처벌을 감수하며 이 운동을 전개했다. 한편 2008년 전 국민적으로 일어났던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도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볼 수 있다. 이 역시 집시법 위반을 감수하며 정부 정책에 시정을 요구한 운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