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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중국의 역사침략 동북공정

최근 일부 중국 네티즌이 한복이나 김치를 자기네 문화라고 주장하면서  우리나라 네티즌과 마찰을 빚었어.
그들이 이렇게 우기는 데는  우리 역사가 중국 역사의 일부라는 인식이 깔려 있지. 
‘동북공정’이란 말을 들어본 적 있니?
중국 정부 차원의 우리 고대사 왜곡 작업으로,  지금의 중국 땅에 세워졌던 우리 고대 왕조가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내용이야. 
먼저 중국 측에서 어떤 주장을 하는지 간략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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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괄  동북 변경 지역의 역사]


고조선은 중국의 지방정권이다.
-
[1]나라 초에 상나라 왕족 ‘기자箕子’가 이주해 기자조선(고조선)을 세웠고, 그 후 주에 신하의 예를 표했다. 
- 기자조선은 후에
[2]나라 장수 위만衛滿이 점령해 위만조선으로 교체되었고, 위만조선은 [3]에 의해 멸망했다. 
- 한나라는 위만조선 자리에 낙랑·진번·임둔·현도 4개의 군인 한사군을 설치했다.

부여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다. 
- 부여를 세운 민족은 고구려와 같은 동이족
[4] 계통이었지만, 후대로 갈수록 선비족[5]과 섞였고, 부여 문화는 선비족 문화에 동화되었다.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다.
- 고구려를 세운 민족은 중국 상나라
[6] 중원에서 중국 동북부로 건너온 민족이다. 
- 건국 당시 고구려는 현재의 중국 영토인 흘승골성紇升骨城에 세워졌다. 이후 국내성,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긴 했지만 평양 역시 과거 한사군이 있던 자리이므로 중국 역사에 포함된다.
- 고구려 대에 세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호산장성虎山長城이 현재 중국 단둥 지역에 있다. 
- 고구려는 중국 역대 왕조에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았다.
- 수·당이 고구려와 벌인 전쟁은 침략이 아니라 지방정권의 이탈을 막기 위한 내전이었다. 
- 고구려 멸망 후 주민 상당수가 중국으로 들어가 한족에 흡수되었다. 

발해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다. 
- 발해의 말갈족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발해는 당의 지방정권이다


어디가 틀렸을까?

도입부의 글은 어디까지나 중국 측의 주장으로, ‘동북공정’이란 연구 프로젝트의 결과물이야. 동북공정이란 중국 동북부 3성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 지역의 역사를 연구하는 프로젝트야. ‘동북 변경 지역의 역사와 현재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프로젝트’란 뜻이지. 중국 최고의 학술 기관인 사회과학원과 3성의 성 위원회가 연합해서 진행했어.  역사 연구 범위는 이 3성 지역을 영토로 삼았던 옛 왕조 모두야. 문제는 이 왕조들을 전부 ‘중국의 속국’이라고 하기 시작한 거지. 이들 고대 왕조의 영토엔 현재의 중국 동북 지역은 물론 한반도 북부 지역도 포함돼 있는데, 한반도 북부 지역 역사까지 중국 것이라고 우기는 셈이 되는 거야.

하지만 중국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을 들어 반박할 거리가 많아. 먼저 고구려는 고조선과 부여를 잇고, 발해는 다시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분명히 하고 있어. 고조선이 건립된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역사서부터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 등장해. 고조선이 있던 시절에 부여가 지금의 중국 길림성에 자리 잡았고, 부여 주민 중에는 고조선 땅에서 사는 이들도 있었어. 그런데 기원전 2세기에 고조선이 한나라에게 멸망했어. 한나라에선 간접 통치를 위해 낙랑·진번·임둔·현도 4개의 군을 설치해. 이게 ‘한사군’이야. 고조선 출신 유민들은 이 한사군을 차례로 몰아냈고, 그 과정에서 세워진 나라가 바로 고구려야. 일부 고조선 유민들은 한반도 지역으로 내려가 삼한마한·진한·변한을 세웠고, 이들은 나중에 각각 백제·신라·가야로 발전했지. 고구려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부여 사람들이 밀려났는데, 이들은 한반도로 내려가 삼한 중 마한과 합쳐 백제를 만들었어. 그래서 백제는 부여를 계승한다고 밝히고 국호도 ‘남부여’라고 했지. 

삼국은 물론 후대의 왕조도 ‘이들 고대 왕조를 계승한다’고 선언했어. 나라 이름만 봐도 고려는 고구려를, 조선은 고조선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담았지. 오래전부터 이들 고대 국가를 ‘우리 역사’로 인식하고 있었으니 가능했던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