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도 주연 배우도 너무 달라서 접점이 없어 보이는 세 편의 영화 <보디가드>, <테이큰>, <그래비티> 사이에는 의외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재개봉해서 다시 관객을 찾은 영화라는 것. 흔히 알고 있듯 영화는 한 번 개봉하면 약 한 달 정도 상영된다. 이 기간이 지나면 극장에서는 더 이상 관람할 수 없으며, VOD나 블루레이를 구매해 관람해야 한다. 특정 영화의 팬이라면 아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극장에서는 유명하고 인기 있는 작품들을 다시 상영하기도 한다.
상영이 끝난 영화를 재개봉하는 일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재개봉이 지금처럼 흔해진 계기는 따로 있다. 2015년, 개봉 10주년을 맞아 재개봉한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3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첫 개봉을 뛰어넘는 인기를 누렸다. 이를 기점으로 영화 재개봉 시대가 열렸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재개봉 횟수가 2015년 45편이었는데, 2016년에는 90편, 2017년에는 87편으로 크게 늘었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재개봉 영화들이 큰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영화 팬들이 재개봉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24시간 영화를 보여주는 영화 전문 케이블 채널이 여럿 있고, 넷플릭스를 비롯해서 다양한 영화를 제공해주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편화되었는데도 사람들은 극장을 찾는다. 더 많은 관람료를 지불하고 굳이 집을 나서서 극장엘 찾아가 영화를 보는 이유는 단순하다. 극장 시설이 좋기 때문이다. 집에 아무리 커다란 빔 프로젝터를 설치하고 아무리 좋은 음향 시설을 갖추었다고 해도 극장의 커다란 스크린과 입체적인 음향을 따라잡기는 힘들다.
화려한 영상미와 웅장한 음향을 자랑하는 영화들의 경우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예매 경쟁이 펼쳐지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14년 작(作) <인터스텔라>이다. <인터스텔라>의 배경인 우주를 더 생생하게 느끼고 싶었던 관객들이 IMAX관 예매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심지어는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암표가 거래되기도 했다. 그리고 1년여 만인 2016년, 관객들의 성원에 의해 재개봉한 <인터스텔라>가 여전한 인기를 누렸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인터스텔라>처럼 극장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영화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재개봉 영화 상영을 반가워한다. 재미있게 본 영화를 극장에서 다시 보며 첫 관람 당시의 추억과 감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추억의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는 이유로 재개봉 영화를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 같지만 의외로 재개봉을 통해 극장에서 처음으로 해당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들이 많다. 맥스무비에서 재개봉 영화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명한 영화를 극장에서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에’ 관람한 비율이 48.1%, ‘재개봉을 기회로 새로 알게 되었기 때문에’ 관람한 비율이 8.1%였다. 즉, 50% 이상 관객이 재개봉을 통해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접한 것. 반면 ‘특정 영화에 대한 향수 때문에’ 재관람을 한 비율은 32%에 그쳤다.
또한 오래된 영화의 경우 재개봉 영화 관객 중 상당수가 첫 개봉 당시 해당 영화를 접하지 못했을 20대인데, 이들이 40대보다 재개봉 영화를 더 많이 관람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매일같이 최신 영화가 등장하고 있음에도 재개봉 영화가 흥행하는 것은 관객들이 비슷한 최신 영화에 질렸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국내 대형 제작사와 배급사는 ‘천만 영화’를 만들기 위해 많은 전략을 쓰고 있다. 그 중 제일 쉬운 방법은 ‘잘 팔리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가족 단위 관객을 노린 영화를 만드는 것은 높은 관객 수를 달성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가족 단위 관객 유치를 위해 영화 초반에는 유쾌한 장면들을, 후반에는 가족의 역할과 사랑을 강조하는 감동적인 장면들을 집어넣는다.
이러한 패턴의 영화가 계속 반복되면 흥행에 성공할 수는 있어도 영화를 자주 보는 관객들은 당연히 질릴 수밖에 없다. ‘잘 팔리는 영화’에 질린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영화들을 찾아보는데, 이때 재개봉 영화는 좋은 선택지다. 재개봉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 영화의 작품성과 재미를 어느 정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재개봉이 진부하지 않은 영화를 접할 기회인 셈이다.
그러나 재개봉에는 큰 문제가 하나 있다. 앞서 언급한 ‘잘 팔리는 영화’의 흥행을 위해 극장이 배정한 상영관을 제외하면 극소수의 상영관만이 남는데, 이 소수의 상영관을 재개봉 영화와 최신 독립영화들이 나눠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조회한 결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전용상영관 중에서도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상영관은 현재 64개이다. 대부분이 소규모 극장들이며 이중 대표적인 멀티플렉스의 예술 영화 상영관은 29개뿐이다. 이마저도 독립영화 최소 상영 횟수만 맞추면 되기 때문에 큰 주목을 받는 작품의 개봉일이면 하루 종일 대형 상업영화를 상영, 독립영화는 뒷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