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세대의 레퍼토리는 ‘일제’ ‘해방’ ‘한국전쟁’, 그리고 ‘보릿고개’였다. 아버지는 6.25 참전용사였고, 어머니는 북한에 고향을 둔 실향민이다. 두 분은 일제 시대에 초등학교를 다녔고, 해방을 겪었으며, 한국전쟁을 치렀고, 폐허 위의 건설기라 60, 70년대의 보릿고개를 살아내야 했다. 그래서 이 세대들은 부자든 가난하든 많이 배웠든 적게 배웠든 절약의 습성이 유전자처럼 각인돼 있다.
하지만 그들의 자녀인 나는 다르다. 80, 90년대 번창하던 시기에 청년기를 보낸 탓에 어릴 때와는 비교가 안 되는 물질적 풍요를 맛봤고, 부모세대와 달리 대학교육도 받아 세상에 대해 크게 주눅들 일 없이 당당한 편이다. 또 기술혁명을 겪으며 회사생활을 해온 탓에 이 변화가 아주 낯설지는 않다. 90년대 초 Dos 시대부터 컴퓨터를 써왔고, 인터넷 보급과 확장도 겪었으며,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결제도 하고 송금도 하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같은 SNS도 하고 있다. 이만하면 뒤처지지 않은, 나름 신세대 같은 쉰세대라는 자부심 같은 게 한켠에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알량한 자부심은 허구한 날 와장창 깨지고는 한다.
내가 어릴 때는 텔레비전이 한집 건너 한 대쯤 있었다(열집 건너 한 대쯤일지도 모른다). 김일이 나오는 레슬링 경기가 있는 날이면 동네 아이들과 어른들이 텔레비전 있는 집에 모여서 함께 볼 정도였다. 이 얘기가 내겐 짜릿한 추억상자지만 자녀들에게는 보릿고개나 전쟁 얘기만큼 황당한 얘기라는 걸 알고 있다. 더구나 이 아이들은 TV 프로그램이 특정 시간에, 특정 채널에서, 특정 시간에만 방송되던 시대를 잘 모른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보면 된다.
그러니 겨울밤 텔레비전 앞에 식구들이 모여 귤을 까먹으며 장난치던 시절의 온기 같은 걸 기대하기는 어렵다. 선호 채널도 달라 텔레비전 시청을 같이 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 그들에게 텔레비전은 문화 향유의 주된 수단이 아니다. 인터넷 세상에는 사시사철 다양한 문화콘텐츠들이 한겨울 눈처럼 펑펑 내려 수북하게 쌓인다. 나는 모르지만 아이들은 아는, 너무나 많은 재밋거리가 빼곡하게 들어 있는 눈치다. 
그래도 가끔 ITV로 영화를 골라 볼 때가 있다. 이때마다 나는 번번이 초라해지는 경험을 한다. 보고 싶은 영화 제목을 대면 아이는 네이버 평점은 믿을 수 없다며 재바르게 IMDB나 Rotten Tomatoes(미국의 영화 관련 웹사이트. 국내에선 애칭으로 ‘썩토(썩은 토마토)’로 불린다)에서 순위와 평점을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