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기를 지나 사춘기를 겪을 무렵, 가장 강렬하게 지배했던 감정이 ‘소외’였던 것 같습니다. 가족과 친구, 학교, 지역사회(혹은 국가)는 아무 일 없이 굴러가는데 나만 혼자 동떨어져 나온 기분이었지요. 외로운 것도 같고, 고립된 것도 같고, 내 삶인데도 왠지 내가 삶의 주인이 아닌 것 같고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 허무감이 들었습니다. 세계로부터 분리된 기분이었고 내가 나로부터도 분리된 기분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의미 없어 보였고, 이 무의미함은 무력감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 등이 일부러 나를 ‘고립’시킨 것도 아닌데 이 소외가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국어사전에서 말하는 소외는 ‘어떤 무리에서 기피하여 따돌리거나 멀리함’이라는 뜻이라는데 당시의 내가 느꼈던 소외는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철학에서 말하는 ‘자기소외’였던 것 같습니다. 인간이 자기의 본질을 상실해 있는 어떤 상태. 사회과학에서는 소외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자신의 주변, 노동 및 노동의 산물, 자아로부터 멀어지거나 분리된 듯한 감정상태를 가리키는 말.”
‘소외’에 관한 담론은 뿌리가 깊습니다. 오늘날에는 ‘소외’를 마르크스주의의 중심 개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만, 사실 소외는 그 이전에도 널리 쓰였던 개념입니다. 가장 일반적으로는, 친구나 동료에게서 떠난다거나 격리된다는 의미인데요, <조선명탐정>이라는 두 남자 배우 중심의 영화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사 제목에서 뜻하는 소외가 이에 해당합니다. “홍일점 이연희, 소외감 느낄까 봐 신경써!” 이밖에도 경제나 법률 분야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이 소유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한다는 의미로, 또 의학 혹은 정신의학 분야에서 일탈이나 정신이상 등의 이름으로 소외라는 말이 사용되기도 했지요.
이러한 소외라는 개념을 철학적인 개념으로 발전시킨 것은 헤겔과 포이어바흐였고, 이후 마르크스가 《경제학 철학 수고》를 출간한 후 소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루카치는 《역사와 계급의식》이라는 책에서 ‘물화(사물화)’라는 용어로 소외의 중요한 측면에 대해 논의했고, 마르쿠제는 마르크스의 《경제학 철학 수고》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소외 개념에 주의를 돌리게 한 인물입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른 뒤 광범위한 논의가 시작되는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물론이고 실존주의 철학자, 문학비평가, 작가, 심리학자들까지 ‘소외’ 논의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20세기 후반 무렵에 이르러서야 소외라는 개념이 비로소 철학사전에 수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