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이시다이시다’, 장난하는 거 같죠? 오늘의 주인공 이름이 정말로 ‘이시다’입니다. 이름값이 인생을 좌우한다며 아버지가 고심 끝에 귀한 이름을 지어주신 덕에 딸은 자라서 이름값을 톡톡히 하게 됩니다. 네, 직장의 ‘시다바리’로. 뭐 막내니까요.
시다는 정말 말 그대로 혼자 살고 있습니다. 굳이 같이 사는 존재가 있다면 애완 햄스터 ‘쥐윤발’. 혼자 고시원에서 살지만 그녀가 쓸쓸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해입니다. 가족들이 ‘팝업창이 수시로 뜨는 시작페이지’처럼 느껴지면서부터 혼자가 되고 싶었거든요. 굳이 다른 사람과 같이 살지 않아도, 방음이 약한 벽을 통해 들려오는 옆방 소리를 통해 이웃의 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점심을 혼자 먹을 수 있는 인류에 속합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식사하는 걸 딱히 반기지 않는 듯 합니다.
시다는 다른 사람과 자신 사이에 놓인 장벽을 굳이 억지로 뛰어넘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타인과 소통하지 않거나 회피하는 건 아닙니다. 감정에 ‘몰입’하는 게 아니라 한 발짝 물러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겁니다. 상대의 감정에 끼어드는 건 상대가 부담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전에 스스로가 피곤해지거든요. 대신 자신의 감정, 그리고 본능에 더 충실합니다. 사실 눈뜨면 바쁘고, 일이 끝났다 싶으면 자야 하는 일상에서 자신을 챙기기조차 부족하니까요. 가끔 시다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행동 패턴이나 생각이 다르다는 걸 발견하지만, 저를 비롯한 많은 독자들은 오히려 시다가 우리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만화의 가장 큰 매력은 발상의 전환과 찰진 비유에 있습니다. 뭔가 일상에서 쉽게 흘려보내는 짤막한 생각들을 콕 집어다, 온갖 지식을 동원해 비유를 합니다. 기형도의 시 〈입 속의 검은 잎〉을 ‘입속의 검은 타피오카’로 패러디하는가 하면, 시다의 실패한 요리 경험을 ‘화학식’에 빗대는 건 또 어떻고요! 그 중에서도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말을 반대로 뒤집은 건 압권입니다. 오늘의 감정은 오늘의 나만이 알고 있기 때문에,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으면 오늘의 나는 항상 내일에 패배하며 살게 될 거라고. 내일의 나에게 패배하지 말고 오늘의 나에게 승리하는 편이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