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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리스>,

기억을 이식해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시한부 선고를 받은 뉴욕의 재벌 데미안은 자신의 기억을 다른 사람인 마크의 몸에 이식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나’는 데미안일까, 마크일까? 참으로 허무맹랑한, 그야말로 영화적인 설정에서 출발한 <셀프/리스>는 해묵은 윤리적 논쟁을 우리에게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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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당신은 억만장자인데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어느 날 한 의료기관에서 당신의 뇌를 다른 신체에 심어 생명을 이어가도록 도와주겠다고 제의한다. 수술이 가능하고, 또 수술의 성공 가능성도 높다면, 굳이 이 제의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돈도 충분하니까. 그런데 잠깐, 당신의 뇌가 심어질 신체는 과연 어디서 구한 것일까?      

과학의 진보는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윤리적인 문제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뇌를 다른 사람의 ‘살아있는’ 신체에 이식해 영생할 수 있다면, 과연 그 영생을 온전히 기분 좋게 받아들일 자신이 있을까. 생명윤리에 대한 이러한 문제의식은 꾸준히 제기되었으며, 영화는 그것을 ‘새로운 내용’으로 담아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오래된 질문’은 아직도 유효하다. 여전히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Who is Me?’, 둘 중 누가 ‘나’인가? 

영화는 ‘신체에 뇌를 이식하면 자아도 같이 이식될 수 있다’는 뇌과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영화 속 이식수술은 ‘정신에 신체를 이식하는 것’이라 보는 편이 맞다. 물론 신체에 심는 것이 ‘뇌’라고 확실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많은 연구 결과를 통해 뇌의 신경과 정신활동이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자아=뇌’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신경 세포 다발이 너무 많아서, 한 사람의 뇌를 다른 사람의 신체에 이식하는 것은 현재의 의학 기술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뉴욕의 부동산 대다수를 좌지우지하는 ‘헤일 그룹’의 소유자 데미안 헤일은 시한부 인생이다. 죽음을 앞둔 그에게  ‘피닉스 바이오제닉’이라는 수상한 생명공학 연구소의 제안이 들어온다. ‘불사조’라는 연구소 이름에 걸맞게도,  ‘죽음을 앞둔 늙은이의 자아를 젊은이의 신체에 이식’해준다고 제안한다. 수많은 갑부들 중에서도 데미안이 선정된 이유는 그만큼 자신의 업적을 인정받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연구소의 올브라이트 박사는 데미안에게 새로이 이식할 신체를 ‘빈 껍데기’라고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