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저씨 말이지요? 아따 저 거시기, 한참 당년에 무엇이냐 그놈의 것, 사회주의라더냐 막덕이라더냐, 그걸 하다 징역 살고 나와서 폐병으로 시방 앓고 누웠는 우리 오촌고모부 그 양반……
머, 말두 마시오. 대체 사람이 어쩌면 글세…… 내 원!
소설의 첫 대목이다. 소설의 화자話者이며 아저씨의 조카인 ‘나’가 판소리 마당극의 소리꾼으로 나서서 구경꾼들에게 자기 아저씨 흉을 보는 대목 같다. 치숙을 한자로 쓰면 痴叔. 痴는, ‘어리석다’ ‘미치광이’라는 뜻이고, 아저씨 叔이니, 치숙은 말 그대로 ‘어리석은 아저씨’거나 ‘미치광이 아저씨’인데, ‘나’가 보기에 오촌고모부는 미치광이라고 할 만큼 ‘어리석은’ 아저씨다. 조카인 ‘나’는 이렇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해 시종일관 오촌고모부를 조롱하고, 비아냥거리고, 비난한다. 조롱의 정도가 얼마나 심한가 하면, 이렇게 극단적인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저 어디로 대나 손톱만치도 쓸모는 없고 남한테 사폐만 끼치고, 세상에 해독만 끼칠 사람이니, 머 하루 바삐 죽어야 해요. 죽어야 하고, 또 죽어서 마땅해요. 그런데 글세 죽지를 않고 꼼지락꼼지락 도로 살아나니 성화라고는, 내…….
한마디로 말해, 아주머니를 생각하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런데 화자인 ‘나’가 주도하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독자들은 점점 ‘나’의 견해와 멀어진다. 판소리 소리꾼의 풍자는 늘 구경꾼을 통쾌하게 하는데, 그 통쾌함은 소리꾼의 풍자에 대한 동조와 응원에서 온다. 그런데 이 작품의 독자인 우리는 오히려 화자인 ‘나’의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고, 나아가 ‘치숙’을 비난하는 ‘나‘를 비판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에는 채만식이 진짜로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숙고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