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아침에 눈을 뜨면 언제나 들려오던 엄마의 밥 짓는 소리인데요, 그릇 부딪히는 소리부터 생선 굽는 소리, 그리고 발음도 어려운 압력밥솥에서 칙칙 김빠지는 소리, 마지막으로 “일어나 밥 먹어라~”라고 깨우시던 생기 넘치는 어머니의 목소리, 나이가 들수록 그립기만한 소리입니다. 이 외에도 마치 음악을 연주하는 듯 악기와 같은 소리가 있지요.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다듬이질 소리, 바람이 가만가만 연주해주는 풍경소리, 또 막힌 듯 뚫린 듯 신비한 소리가 나는 물허벅까지. 생각해보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훌륭한 음악이었지요. 
이제는 무거운 압력밥솥 대신 간편한 전기밥솥이 어머님의 어깨를 위로합니다. 물가에서 한나절을 두들겨야했던 다듬이질은 손가락 하나로 힘 있게 돌아가는 세탁기가 그 짐을 덜어주었지요. 이렇게 간편하고 효율적인 사회가 되면서, 어느 샌가 우리 주변엔 늘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같은 소리가 공허한 귓전을 울립니다. “카톡!”
“찹쌀~ 떠억! 메밀~무욱!”
자정이 넘어갈 무렵, 조용한 동네에 뻔뻔하리만큼 익숙하게 소리를 지르시는 한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목이 탁 트여서 멀리까지 울림이 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반복해서 외칠수록 “찹쌀~”의 쌀이 어찌나 길어지던지 숨넘어갈 듯 이어지는 소리를 듣노라
면, 마치 세계적인 성악가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노래하는 듯 착각이 빠집니다. 특히 끝부분의 “떠억!” “무욱!” 하며 목을 단호하게 한 번씩 꺾어주던 부분이 재미있어 으레 따라 외치던 기억이 납니다.
이에 질세라, 전혀 다른 색깔의 목소리로 내공을 쌓아온 또 한 분이 계십니다.
“세~탁. 세~~탁.”
언제 나타났는지 모르게 현관 너머로 들리는 낮고 탁하지만 분명한 소리. ‘세탁 아저씨’입니다. 이분의 소리는 판소리 목으로 치자면 ‘탁성(濁聲)’입니다. 말 그대로 소리가 탁하다는 뜻이지요. 깨끗하고 명확한 목소리가 아니라 소리바닥에서는 그리 인정받지 못할 때가 많지만, 이 소리의 매력에 한번 빠지면 쉽게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걸걸한 그 목소리, 아직도 맴돕니다.
잘 생각해보면, 찹쌀떡 아저씨와 세탁 아저씨가 서로 상반되게 소리를 내는 데는 이유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밤늦은 시간, 출출한 배를 달래며 잠을 청하려는 사람들에게 우렁찬 목소리로 야식이 왔음을 알리는 것이겠지요. 또 오늘은 일이 너무 많아 빨래만큼은 도저히 못하겠다, 누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싶은 어머니께는 낮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더 마음에 와 닿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서로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소리’를 찾은 것이지요. 이렇게 자연스럽고 탁월한 소리를 두고 ‘좋은 성음이다’라고 합니다. 요는 남의 소리가 아닌(흉내 낸 것이 아닌), 나의 소리, 즉 잘 어울리고, 삶과 진심에서 우러난 소리야말로 진짜 성음인 것이지요.
성음은 이처럼, 상황에 맞게 잘 어울리는 소리와 음색, 그리고 그에 따른 표현 등을 말하는 복합적인 뜻의 우리음악 용어입니다. “그 연주자 성음 참 좋네!”라는 말만큼 국악을 하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