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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미국의 아시안 혐오범죄 급증

2021년 3월 16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아시안 대상 총격 사고가 발생해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용의자 로버트 에런 롱이 아시아계 미국인이 운영하는 마사지 업소 3곳에서 총기를 발사, 총 8명이 숨진 건데요. 조사를 담당한 경찰은 이 사건을 ‘성 중독 범죄’로 일축, 사건의 본질을 흐린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미국에서 폭증한 아시안 혐오 범죄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그럼에도 아시안 혐오가 미국의 주요 사회 문제로 논의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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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아시안 혐오 늘고, 무차별 폭력으로 이어져 

2021년 3월 16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충격적인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 로버트 에런 롱이 아시안이 운영하는 마사지 업소 3곳에 들어가 총 8명을 살해한 것. 피해자 중 6명은 아시아계 여성이다. 로버트 애런 롱은 무차별 난사가 아니라 피해자들을 정확히 조준해 범행을 저질렀으며, “아시안을 다 죽이겠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파장이 일었다.

근래 미국에서 아시안 혐오 범죄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2021년 1월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산책하던 84세 아시아계 남성이 구타당해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2월 16일엔 빵집 앞을 걷던 52세 아시아계 여성이 갑자기 행인에게 공격받아 병원으로 실려갔다. 같은 날 뉴욕의 지하철역에서 68세와 71세 아시아계 여성 두 명이 얼굴을 가격당했다.

아시안을 대상으로 한 폭력 사건이 코로나19가 유행한 2020년 이래 급증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 ‘쿵푸 바이러스’ 등으로 불렀는데,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코로나19를 아시아계와 연관 지은 이런 발언들이 혐오 범죄를 부추겼다고 분석했다.

미국 ABC방송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 이후 소셜미디어에서 ‘중국 바이러스’ 해시태그 사용 수가 83배 늘었다고 보도했다. 샌프란시스코대학 연구팀은 ‘중국 바이러스’ 해시태그가 붙은 게시물 중 절반 이상이 아시아 혐오 정서를 포함했다고 밝혔다. 총격 사건의 용의자 로버트 애런 롱 역시 중국이 일부러 코로나19를 퍼뜨렸다는 주장을 페이스북에 올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관련 연구를 진행한 존 브라운스타인 박사는 “증오 메시지는 온라인에서 끝나지 않고 현실에서 증오를 표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비영리단체 ‘증오 및 극단주의 연구센터’는 2020년 미국 16개 대도시에서 발생한 전체 인종차별 범죄는 2019년보다 7% 감소했지만,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는 도리어 149%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의 경우 증가세가 1200%까지 치솟았다. 2020년 3월부터 2021년 3월까지 미국에서 신고된 아시아계 혐오 범죄는 3,800건이 넘는다. 아시안아메리칸정의진흥협회(AAAJ) 존 양 전무이사는 “코로나19에 대한 무지와 잘못된 정보가 아시아계를 향한 무차별적 공격으로 이어졌다”고 언급했다.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미국의 아시안 혐오 정서

한편 미국의 인종차별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아시안 혐오를 발생시킨 근본 원인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코로나19는 혐오 정서를 폭발시키는 방아쇠 역할을 한 것으로 이미 미국사회에 아시안 혐오 의식은 널리 퍼져 있다는 설명이다.

여러 인종 중 아시아계는 미국 인구의 6%에 불과해 주류집단인 백인(60%)을 비롯해 흑인과 히스패닉(각각 13.5%, 18.5%)보다 정치적 발언권이 약하고 이방인으로 취급받는 일이 잦다. 또한 아시안 혐오 범죄는 나치나 KKK[1] 구호로 식별되는 유대인·흑인 혐오 범죄와는 달리 입증이 어렵다. ‘아시안을 겨냥했다’고 볼만한 특별한 상징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시안 혐오는 미국 사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2021년 하루 10건가량 아시안 혐오 신고가 들어온 뉴욕시에서 3월까지 아시안 혐오 범죄로 인정받은 사례는 한 건에 그쳤다. 

이번 애틀랜타 총격 사건의 경우 수사를 맡은 조지아주 경찰은 범행 동기를 용의자가 주장한  “(성 중독) 유혹을 없애려 범행”한 것으로 발표했다. 인종차별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 이에 대해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레이션 레이 연구원은 용의자가 아시아인이 운영하는 마사지 업소만 골랐다며 “범인은 인종차별주의자 겸 성차별주의자”라고 규정했다. 

미국 사회에서 아시안 혐오 문제가 불거져 나오자, 백악관은 3월 30일 아시안 혐오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태스크포스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를 미국인으로 뭉치게 하는 핵심 가치와 신념이 있다. 그중 하나가 혐오와 인종차별에 맞서 결속하는 것”이라 말했다. 뿐만 아니라 바이든은 혐오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침묵 또한 공모라고 못박았다.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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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미국의 아시안을 속박하는 프레임, ‘모범적 소수자’  

미국 내에서 아시안은 ‘모범적 소수자’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모범적 소수자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학업에 집중해 고소득 전문직에 종사하는 미국 아시안의 전형을 말한다. 이처럼 아시안은 모두 잘 살고 있다는 통념이 있어 이들이 겪는 인종차별이 오히려 드러나지 않고 있다. 사회 지도층(주로 백인)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논리가 지배적이다. ‘아시안들은 성공해서 어떤 불만도 말할 이유가 없다’는 것. 따라서 이들은 아시안 인종차별에 항의해도 제대로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미국의 아시안 중 4분의 1은 저소득층인데도, 모범적 소수자 이론에 가려 적절한 도움조차 못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모범적 소수자 이론은 아시안과 흑인, 히스패닉 등 미국 내 소수집단의 연대를 방해한다.  백인 지배층이 “똑같은 인종차별을 경험하는 아시아인들은 성실한 노동의 대가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내는데, 왜 당신들은(흑인들은) 못하나?”라는 식으로 모범적 소수자 이론을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쓰기도 한다. 
 

02 21세기 황화론[2]? 아시안 혐오로 물든 서구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