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3일 대만 해운업체 소속의 에버기븐Ever Given호가 수에즈 운하에서 좌초되어 7일간 통행이 마비되는 사건이 있었다. 에버기븐호는 길이 400m, 폭 59m의 초대형 선박으로 중국에서 출발해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사건 당일 선박은 수에즈 운하 중간에서 좌초해 뱃머리가 한쪽 제방에 박히고 선미는 반대쪽 제방에 걸쳐져 운하 전체를 막아버렸다. 이집트 수에즈운하관리청SAC이 예인선을 투입해 사고를 수습하려 했으나 배가 너무 크고 선체의 일부가 모래톱에 박혀 있어 예인 작업[1]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작업이 끝날 때까지 400여 척의 선박이 수에즈 운하에서 대기해야 했다.
에버기븐호가 정상 항로로 되돌아오기까지는 약 1주일이 걸렸다. 빠른 사건 수습을 위해 세계 각국의 선원과 예인선 10여 척, 모래 준설기, 인양업체 등이 총동원됐다. SCA와 구난 작업에 합류한 업체들은 수심이 높아지는 3월 29일 만조를 적기로 판단, 현지 시각으로 새벽 4시 30분에 선박 인양에 성공했다. 일각에서는 에버기븐호의 빠른 인양이 슈퍼문 덕에 가능했다고 보도했다. 3월 29일에는 보통의 보름달보다 커다란 ‘슈퍼문’이 떴는데, 이로 인해 해수면이 평소보다 약 46cm나 높아져 배를 인양하는 작업이 수월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정체했던 선박들은 인양 작업 후 빠르게 운하를 통과했다. 원래 운하를 통과하는 제한최고속도는 7.6~8.6노트시속 약 14~16㎞지만 사고 직후 정체되었던 선박들은 이보다 빠른 8~10노트시속 약 14~18㎞로 운항을 재개해 하루 평균 통행량이 약 80여 척까지 늘어났다. (수에즈 운하의 하루 평균 통행량은 50여 척이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사고가 수습된 지 5일이 지난 4월 3일, 수에즈 운하 정체는 완전히 해소되었다.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한 이번 사건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다. 에버기븐호 선원들은 시속 74㎞의 모래폭풍이 원인이라고 주장했지만 수에즈운하관리청의 오사마 라비 청장은 날씨보다 “기술적 또는 인간의 오류가 있었을 수 있다”며 명확한 조사를 촉구했다.
이번 사고의 피해는 말 그대로 어마어마하다. 수에즈 운하에 갇혀 있던 배들만 피해를 본 게 아니다. 막힌 수에즈 운하를 대신해 7~9일이나 더 걸리는 아프리카 남쪽 항로를 택한 배들, 그 배에 선적된 물건을 팔아야 했던 회사 등도 피해를 봤다. 이번 사고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유럽의 자동차 제조·부품업체였으며,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수출하는 커피와 화장지의 원료 공급도 차질을 빚었다. 원유와 LNG 운반도 지연돼 국제 유가도 크게 출렁였다.
피해 금액을 계산해본 결과, 수에즈 운하 사고로 매일 96억 달러한화 약 10조 원 규모의 물류 이동이 막혔고, 대기한 선박들은 1척당 하루 약 6만 달러한화 약 7000만 원의 손해를 본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운하를 운영하는 이집트는 하루 약 1400만 달러한화 약 158억 원의 손실을 봤다며 원인이 규명되는 대로 10억 달러한화 약 1조 1280억 원 규모의 배상금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가장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보험회사들이다. 피해를 입은 각 회사가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하면, 그 보험회사들은 에버기븐호 선주에게 손실 보상을 요구하고, 선주는 다시 자신이 가입한 보험사에 의존할 것이다. 과정이 이렇게 복잡하다 보니 보험금 지급까지 길게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선박 회사와 담당 보험사가 줄도산할 가능성도 있다.
한편,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제2 운하’를 건설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 세계 교역량의 무려 12%를 차지하는 수에즈 운하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국제연합 무역개발회의UNCTAD는 최근 이집트와 이스라엘 국경 지역을 따라 신규 운하 건설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북극항로 개발 추진에, 중국은 ‘일대일로[2]’ 홍보에 열을 올리는 등 신규 물류 노선을 개척하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월간 <유레카> 2021년 5월)
15세기까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세계 교역의 허브는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중심, 이스탄불이었다. 그러나 15세기 말, 조금 멀리 돌아가야 하긴 했지만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의 희망봉을 거쳐 인도로 직교역하는 항로가 개척된 후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이 해양패권을
잡았다.
영국의 패권을 탐내던 프랑스는 수에즈 지협의 잠재력을 깨닫는다. 프랑스 외교관 출신인 페르디낭 드 레세프는 1854년 이집트 총독(군주)인 사이드 파샤로부터 공사권을 따내어 수에즈운하회사를 설립하고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 시작 10년 만인 1869년 11월 17일에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며 런던에서 아라비아해까지의 항로는 약 8900㎞나 단축됐다. 이는 당시 선박의 속도로 한 달(현재는 8~10일) 가까이 걸리는 거리였다.
1956년 새롭게 이집트의 권력을 잡은 가말 압델 나세르는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선포한다. 이에 맞서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이 손잡고 수에즈 운하를 침공, 제2차 중동전쟁수에즈 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은 미국의 압박으로 빠르게 종결되고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를 지키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1967년 다시 3차 중동전쟁이 일어나고, 이집트는 중동에서 이집트의 지정학적 입지를 인정하라는 의미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려 8년간이나 수에즈 운하를 15척의 배로 폐쇄시키는 시위를 벌인다.
1973년 발발한 제4차 중동전쟁 후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 수출을 금하는 바람에 오일쇼크가 발생, 물류비를 줄이기 위해 운하 개통이 절실해졌다. 이에 1975년 협상이 타결되며 다시 열린 수에즈 운하가 이집트에게 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