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1부 ‘창백한 말’을 재구성·각색했습니다.
어제는 맥주를 진탕 마시고 피곤한 탓에 곯아떨어졌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마을이 왠지 어수선하다. 간밤에 이웃집 조련사 빅 레일 씨네 마구간의 말이 한 마리 죽었다. 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안 쓰는 듯하지만, 어딘가 안 좋은 느낌이 와.
헨드라는 경마업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어젯밤 죽었다는 암말은 ‘연속극’이다. 은퇴 후 새끼 생산을 위해 사육 중이었다는데, 마침 빅 레일 씨가 지나가는 걸 붙잡아 말을 걸었다.
“빅 레일 씨, 연속극에게 지병이 있던 건 아닙니까? 화물차에 실려 가는 꼴을 보니 거품을 물고 있던데요.”
빅 레일 씨는 예민해 보였지만 차분히 설명을 해줬다.
“며칠 전엔 그냥 컨디션이 안 좋은 줄 알았네. 그런데 별안간 입술과 눈꺼풀, 턱이 부어오르더니 어제부터는 땀을 비오듯 흘리고 먹지도 않더군. 어제 저녁에 수의사 피터 레이드가 항생제를 놓아주었지만… 새벽 4시에 갑자기 마구간을 뛰쳐나가더니 다리가 찢어져 뼈가 드러날 정도로 쓰러지고…. 결국 벽돌을 들이박고 숨졌어, 제기랄. 건강하던 녀석인데, 참.”
항상 단정히 빗어 넘긴 모양을 유지하던 레일 씨의 갈색 머리가 한껏 흐트러져 있다. 레일 씨, 어쩌면 전염병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라는 질문은 하지 않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슬쩍 살펴본 마구간은 그리 넓지 않아서 연속극이 죽는 모습을 다른 말들이 생생히 지켜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