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스물여섯에, 직업이 소설가인 구보씨. 일찍 오너라, 하는 어머니의 말에 우물쭈물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청계천변 집을 나선다. 그러나 다리 모퉁이를 도는 순간 걸음을 멈춘다.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갈 곳이라곤 한 군데도 없는 막막함 속에 길을 나섰던 것.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제목 그대로다. 일본 유학도 다녀왔고, 문재文才도 제법 있는, 젊은 소설가가 하루 동안 경성거리를 방황한 기록이다. 그의 하루는 별로 흥미롭지 않다. 구보가 특별한 어떤 행동을 벌인 것도 아니요, 별다른 사건을 겪은 것도 아니다. 전차를 타고, 포도(鋪道, 포장된 도로가 흔하던 시절이 아니다)를 걷고, 벗을 만나고, 우두커니 사람들을 관찰하다, 새벽 두 시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가만 보니, 이 하루는 그의 일상인 듯 보인다. 그래서 어머니는, “다시 바느질을 하며, 대체, 그 애는, 매일, 어딜, 그렇게, 가는, 겐가, 하고 그런 것을 생각하여 본다.”(장기하의 노랫말 같은 문장에 피식 웃음이 났다) 나 역시 그 어머니의 말처럼, 대체, 그는, 매일, 어딜, 그렇게, 가는, 겐지, 궁금해진다.
작가소개
구보(仇甫) 박태원 (朴泰遠, 1909~1986)
작품의 이데올로기보다는 문장 그 자체의 예술성을 중시하고, 새로운 소설적 기법을 시도하는 한편, 인물의 내면 의식 묘사를 중시하는 등 강한 실험정신을 보여준 작가이다. 서울 출생으로 1930년 단편 <수염>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단에 나왔다. 구인회 활동을 하면서 반계몽, 반계급주의문학의 입장에서 세태풍속을 착실하게 묘사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등을 발표,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1930년 일본 호세이대학에 입학했으나 중퇴했는데, 일본 유학 시절 현대 예술 전반에 대한 폭넓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1933년 구인회에 가입하면서부터 예술파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정립하기 시작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가족을 남겨둔 채 월북했고, 북한 쪽 종군기자로 활동했다고 한다. 1960년에 대하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의 집필을 착수하지만, 당뇨병과 고혈압으로 실명과 전신불수가 되는 시련을 겪으면서 1, 2부를 출간한다. 1986년 사망했으며, 사망 후에 박태원의 구술을 정리하여 《갑오농민전쟁》 3부가 출간되었다. (출처_대교 리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