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인 2015년 8월 15일, 한국 영화사상 열여섯 번째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탄생했다. 배우 이정재와 전지현이 등장하는 <암살>이 그 주인공. 이 영화에서 백범 김구와 함께 친일파 암살을 모의하는 인물이 약산 김원봉. 영화의 성공과 더불어 한국 독립운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지만 해방 이후 월북을 했다는 이유로 우리에게는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김원봉의 행적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의열단과 조선의용군 대장 정도로만 알려진 약산 김원봉은 누구인가.
김원봉은 1898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열한 살 때 일장기를 화장실에 집어넣은 일로 퇴학을 당하고, 열여덟 살 되던 해에 중국으로 건너갔다. 외국에 가서 군사학을 공부해 그 힘으로 나라를 되찾을 요량이었다. 1910년대의 독립운동가들은 중국의 신해혁명과 러시아 혁명을 지켜보면서, 무장투쟁을 통해 나라를 되찾고 공화국을 건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하고, 국내에서 3·1운동이 벌어지자 김원봉도 자신의 계획을 바꿨다. 일본과의 독립전쟁을 당장 시작해야한다는 결심을 세운 것이다.
1919년 11월 만주 길림성에서 신흥무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하고 단장을 맡았다. 의열단은 ‘정의正義를 맹렬猛烈히 실행한다’는 뜻으로 영화에서처럼 일본 고관과 친일파 암살, 관공서 폭파 등을 주 임무로 활동한 항일 무력단체다. 1920년 9월 부산과 밀양 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해 하시모토 부산경찰서장을 폭사케 한 박재혁과 최수봉, 1921년 9월 조선총독부에 폭탄 투척한 뒤 유유히 도주하고 이듬해 3월 상해에서 오성륜과 함께 일본육군대장 다나카를 총살한 김익상, 1923년 1월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일본경찰을 상대로 시가전을 벌인 김상옥, 1924년 동경 황궁에 폭탄을 던지려다 실패한 김지섭, 1926년 12월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철도회사를 찾아가 권총을 난사한 나석주 등이 대표적인 의열단원이요 활동이다.
의열단은 7가살七可殺_죽여야할 대상 5파괴五破壞를 지침으로 활동했다. 즉 조선총독부 총독 이하 고관, 일본군부 수뇌, 대만 총독, 매국노·친일파 거두, 적의 밀정, 반민족적 귀족, 대지주를 암살 대상으로,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사, 각 경찰서, 기타 왜적의 주요기관을 파괴 대상으로 삼아서 일본 수뇌부와 앞잡이들에게는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당시 일제가 내건 김원봉의 현상금은 100만원으로 김구 주석의 현상금60만원보다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