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아이를 만났다. 꼬마 아이는 원형극장 옛터에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살고 있었다. 아이의 이름은 모모였다. 나는 여중학생일 때 모모를 슬쩍 만난 적이 있다(언뜻 만난 탓이라 여태 모모가 작은 소년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때 나는 모모가 하는 얘기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저 소녀다운 낭만적 환상 속에 모모의 모습을 막연히 담아두었다.
꽤 긴 시간이 흘렀다. 가끔은 회색신사에게 시간을 도둑맞기도 하고, 가끔은 거북이 카시오페이아[1]를 따라 뒷걸음질 흉내도 내면서, 나는 내 생의 모래시계를 조금씩 흘려보내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어른이 돼 있었다.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원형극장의 황량한 옛터를 찾았다. 그곳에는 여전히 아이들이 몰려와 모모와 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청소부 베포나, 관광안내원 기기, 이발사 푸지와 미장이 니콜라, 선술집 주인 니노처럼 모모를 찾아가 긴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 책의 부제는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다. 《모모》를 소개하는 가장 짧고도 적확한 글이다.
마음을 주고받으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모모의 이웃들에게 어느 날 회색신사가 찾아와 사람들의 시간을 도둑질한다. 시간을 도둑질 당하자 이웃들은 가슴도 잃어버려 삭막한 기계인간처럼 시간에 쫓겨 행복도 풍요로움도 없는 각박한 삶을 살아가게 되고, 모모는 이런 이웃들을 위해 회색 신사에 맞서 싸워 시간을 되찾는다. 《모모》는, 차가운 생에 갇혀 마음을 잃어가는 어른을 위한 잠언집이요,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적인 메커니즘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동시에 치유의 길을 동시에 담은 환상소설이다. 하지만 어떤 해석보다 내게 중요한 건, 이 책이 모모를 만나러 가는 길이란 사실이다.
작가소개
미하엘 엔데(1929~1995)
남부 독일에서 화가인 아버지와 역시 화가인 어머니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글, 그림, 연극활동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엔데의 예술가적 재능은 그림뿐만 아니라 철학, 종교학, 연금술, 신화에도 두루 정통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특히 컸다. 1960년 첫 작품 《기관차 대여행》을 출간,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했다. 1970년 《모모》로 같은 상을 또 수상하고, 1979년에는 《끝없는 이야기》를 출간했다.
엔데는 이 두 소설에서 인간과 생태 파국을 초래하는 현대 문명사회의 숙명적인 허점을 비판하고, 우리 마음속에 소중히 살아 있는 세계, 기적과 신비와 온기로 가득 찬 또 하나의 세계로 독자를 데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