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직접 작품을 읽지는 못했더라도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오로지 ‘살 1파운드’만 가져가라”는 유명한 판결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테니까. 그동안 이 작품은 낭만적 사랑 얘기가 가미된 희극으로 분류돼 왔다. 악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를 무릎 꿇리고, 동시에 등장인물 서로 간의 사랑을 확인하며 일단락되는 스토리는 희극으로 분류하기에 별 무리가 없다. 단 한 사람, 샤일록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이 행복한 결말에서 철저하게 배제돼 있다. 그는 재판에서 패배했고, 재산을 몰수당했으며, 딸에게 버림받았고, 그토록 저주하던 기독교로 강제 개종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샤일록의 입장에서 본다면 분명 고통과 상실의 비극이다.
따라서 평가의 중심에 놓여 있는 샤일록을 살펴보는 것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희극이 될 수도, 비극이 될 수도, 혹은 로맨스나 복수극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 샤일록은 베니스에서 고리대금업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기독교를 믿는 대다수 상인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비싼 이자를 받아 돈을 모았다. 샤일록은 이 작품에서 매정하고, 인색하며, 지독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에 대한 평가가 안 좋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그가 유대인이라는 것과 고리대금업을 한다는 것. 그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그는 ‘악한’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샤일록과 가장 대비되는 사람은 안토니오다. 샤일록이 지독하고 고약한 악한의 전형이라면, 안토니오는 우정이 깊고, 친절하며, 희생적인 자비의 전형이다. 기독교인인 안토니오는 무역을 통해 막대한 재산을 벌었다. 그는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무이자로 돈을 빌려줄 만큼 관대하고 인정이 많다. 친구 바사니오와의 우정을 위해 그는 ‘인육계약’까지 하면서 샤일록에게 돈을 빌린다. 그는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사람이다. 하지만 샤일록의 입장에서 본다면 안토니오는 친절하지도, 관대하지도, 자비롭지도 않다.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경멸하는 유대인들보다 더 잔인하고, 비열하다. 이는 샤일록의 대사에서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