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주위를 돌아볼까? 세상의 체계가 기막히게 잘 짜여 있지? 학교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그 시스템이 좋고 나쁘고는 미뤄두고 시스템 자체만 보면 규율을 비롯한 체계가 여간 단단한 게 아니야. 그리고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서 교육받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이 시스템 안으로 익숙하게 걸어들어가서 평생을 순응하며 살아가게 돼.
피터 빅셀은 그런 우리에게 참으로 기이한 일곱 명의 노인들을 소개하고 있어.
한 노인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해 보려 길을 나서. ‘지구는 둥글다. 그렇다면 앞으로 계속 걸어나간다면 언젠가 원래 있던 자리로 올 것이다. 절대로 돌아가서도 안 되고 옆으로 가도 안 된다. 무조건 일직선으로 가자.’ 노인은 만약 그 길에 다른 건물이 막고 있다면, 사다리를 타거나 밧줄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장비도 챙겼어.
어때? 별나지?
또 한 사람은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게 아주 지루하고,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체계를 아주 답답해했어. 그래서 그는 주위의 사물에 자기가 다른 이름을 붙여서 불러. 뭐 이렇게.
“언제나 똑같은 책상, 언제나 똑같은 의자들, 똑같은 침대, 똑같은 사진이야. 그리고 나는 책상을 책상이라고 부르고 사진을 사진이라고 하고, 침대를 침대라고 부르지. 또 의자는 의자라고 한단 말이야. 도대체 왜 그렇게 불러야 하는 거지?”…
“이제 달라질 거야.” 이렇게 외치면서 그는 이제부터 침대를 ‘사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피곤하군, 사진 속으로 들어가야겠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아침마다 한참씩 사진 속에 누운 채로 이제부터 의자를 뭐라고 부를까를 고심했다. 그러다가 의자를 ‘시계’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시계 위에 앉아 양팔을 양탄자 위에 괴고 있었다.
참 재미난 발상이야. 언어의 약속을 독단으로 깨기 시작한 이 사람은 나중에 어떻게 됐을 거 같아? 뭐 생각해볼 것도 없이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게 되지 않겠어? 피곤해서 ‘사진’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남자와 누가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겠냔 말이지?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 하면서 읽게 되지만, 읽다보면 자꾸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별난 책이야. 사람들이 다 아메리카의 존재를 믿는데 혼자만 아메리카는 없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세상과 담을 쌓고 혼자 처박혀 발명에 몰두하는 사람 얘기도 희한해. 아이러니하게 그가 불굴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발명품은, 이미 텔레비전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