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이하 《아홉 켤레…》)는 1977년에 발표된 윤흥길의 중편소설이죠. 이 작품은 직접적으로는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을 다루고 있고, 동시에 소시민 지식인 권기용이 도시빈민으로 몰락해 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당시 진행되던 도시화 정책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폭로하고 있습니다.
‘광주대단지 사건’ ‘70년대 산업화의 그늘’ ‘비인간적 도시화 정책’ ‘소시민[1]의 내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한 이 키워드들이 지금 여러분들에게 얼마나 낯설지 짐작이 갑니다. 그러니 소설의 주제가 무엇인지, 제재로 삼은 것은 무엇인지, 아홉 켤레 구두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은 잠시 뒤로 밀어두고, 화자(이야기를 말하는 사람) 오 선생의 눈을 빌어 주인공 권기용의 삶을 들여다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권씨 못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오 선생의 머릿속도 무척이나 복작거립니다. 
오 선생이 대지 100평 남짓한 집을 사게 된 과정을 들여다보면, 오 선생의 형편도 권씨보다 더 나을 게 없어 보입니다. 만일 권씨의 내 집 마련 계획이 잘못되지만 않았다면, 두 사람은 고민을 함께 나누는 이웃이 될 수도 있었겠지요.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 소시민 지식인으로서 전형적인 서민의 삶을 꾸려가려 했으니까요.
권씨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서민의 삶이란 것이 까딱 발을 잘못 디디면 순식간에 도시빈민으로 몰락하게 된다는 것을 새삼 절감하게 됩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강팍함 속에 내몰려 있는 지금이나, IMF 당시에도 중산층과 서민층의 빈곤화에 대해서는 언론에서 부지런히 다루었는데, 1970년 당시에도 가난한 회사원이나 소자영업자를 포함한 소시민 계층이 도시빈민으로 전락할 위험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의 도시개발 정책이 가진 문제점과도 맥락이 닿아 있는 부분도 있구요.
결국 권씨는 아홉 켤레의 구두를 남겨둔 채 홀연히 사라져 버립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살펴보고, 그의 삶을 고통으로 이끈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광주 대단지 사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지금의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없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길 바랍니다. 참고로, 《아홉 켤레…》는 연작소설로, 이후 권씨의 후일담은 <직선과 곡선> <날개 또는 수갑> <창백한 중년> 등에서 다루고 있으니, 찾아서 읽어보는 것도 좋겠군요.
그는 조로한 편이었다. 피부는 거칠고 수염은 듬성듬성하고 주름이 많았다. 이마가 나오고 광대뼈가 솟은 편이며 짙은 눈썹에 유난히 미간이 좁은 데다가 기형적으로 덜렁한 코가 신통찮은 권투선수의 그것처럼 중동이 휘었고….
오 선생이 본 권기용의 생김새예요. 긍정적으로 봐줄 부분이 별로 없어 보이죠? 게다가 오 선생 키는 보통인데, 권씨에 비하면 거인이나 다름없다니 키도 작고 아주 왜소한 사내인 모양입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고, 임신한 아내를 둔 한 집안의 가장이에요. 살림은 형편없어서 이삿짐이라곤 세간살이[2] 몇 점뿐이고, 보증금 20만원도 다 못 내고 10만원만 들고 이사를 왔죠.
하지만 자존심만큼은 짱짱합니다. 비록 사는 형편은 도시빈민이지만, 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이라는 자부심이 있답니다. 자부심을 보여주는 몇 대목을 보면, 그는, “이래봬도 나 안동 권씨요!” “이래봬도 나 대학 나온 사람이오.” 라고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그 말에 묻어나는 쟁쟁한 자존심이 그의 사는 형편과 대비되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습니다. 그의 자존심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열 켤레의 구두예요. 그의 구두에 대해 묘사한 곳을 소설에서 찾아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입니다.
이사온 첫날, 오 선생의 눈에 띈 것은, “먼지가 닦여 반짝반짝 광이 나는” 그의 구두코였죠. 아침마다 대여섯 켤레 구두를 늘어놓고 닦느라 여념이 없었고, 전문 직업인 못지않게 구두 닦는 도구를 갖추고 있었고, 공사장에서 우연히 보았을 때도, 땀과 먼지 범벅의 잠바와 대조적으로 “구두만은 여전해서 칠피가죽에 공들여 올린 초콜릿빛 광택이 권씨의 가장 권씨다움을 외롭게 지켜주고” 있었죠.(이외에도 중요한 매순간 권씨의 구두가 등장합니다.)
분수에 맞지 않은 그의 열 켤레 구두는 이런 의미를 품고 있었어요.
“보기 좋게 큰 눈이 사악하거나 난폭한 구석은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맑고 섬세한” 권씨.
하지만 그는 ‘사찰 대상자’였습니다. 경찰이 시시콜콜 동태를 살펴야 하는 요주의 인물인 것입니다. 권기용은 무엇 때문에 ‘사찰 대상자’가 되었을까요?
소시민 권씨가 도시빈민으로 몰락한 것도, 사찰 대상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것도 모두 ‘광주대단지사건’과 맞물려 있어요. 권씨는 광주(지금의 성남시)에 대규모 주택단지가 들어선다는 소문에 빚을 내 편법으로 철거민 입주권을 샀는데, 이후 정부의 불합리한 조치로 내 집 마련의 꿈은 좌절되고 졸지에 도시빈민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지요.
초기에 이주민에게 평당 200원에 불하했던 땅 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버린 겁니다. 더욱이 토지대금을 일시불로 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철거민들과 권씨는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이에 주민들은 정부와 행정당국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 투쟁위원회를 조직했고, 권씨는 투쟁위원회의 대책위원과 투쟁위원을 맡게 됩니다. 이런 감투를 맡을 당시에도 권씨는 철거민과 동질감을 가질 수 없었어요. 소위 딱지라고 부르는 철거민 입주권을 불법으로 산 권씨와 도시빈민인 철거민들의 처지는 엄연히 달랐어요. 권씨는 서울에 어엿한 직장을 가진 인텔리 소시민이었으니까요. 당시 철거민들은 대부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지요. 
소설은, 권씨가 오 선생을 찾아와 자신의 과거와 관련된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서 잠시 시점이 바뀝니다. 이러한 작가의 거리감은 서술자의 불분명성과도 물론 관련이 있지요. 시점이 일관되지 못한 것도 그렇고, 문제를 흐릿하게 묘사하는가 하면, 절정을 극화하지 않고 긴장을 늦추는 등 작가가 가급적 이 문제에 끼어들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요.
권씨는 비록 사건에 연루돼 사찰 대상자가 되긴 했지만, 광주대단지 사건을 철거민의 입장에서가 아닌, 불법으로 딱지를 산 소시민의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지요. 그래서 《아홉 켤레…》는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 정책이 얼마나 민중의 삶을 짓밟았는지, 도시빈민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아요. 소시민적 이중성을 지닌 두 인물, 권씨와 오 선생의 눈과 입을 통해 사건이 서술되기 때문이지요.
소설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지만 당시 철거민의 상황은 한마디로 참혹했어요. 12만명의 도시빈민들은 허허벌판에 움막과 판잣집을 얼기설기 엮은 채 4~5가구씩 집단 천막생활을 해야 했어요. 도시기반시설이 전혀 안 된 터라, 일용노동, 행상, 노점상으로 하루 생계를 꾸리던 이주민들은 서울에 일을 하러 갈 수가 없어 생계 문제가 나날이 극심해져갔어요. 뿐만 아니라 전기, 수도 등 제반 시설 부족으로 제대로 먹고 씻을 수도 없어 전염병이 창궐하는 등, 도저히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가 없었지요. 이 사건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자료를 보면, 그들 철거민이 왜 1971년 8월 ‘빗속의 난동 6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애써 철거민들과 거리를 두었던 권씨는 순간적이고, 우발적인 경험을 거쳐 시위 주동자가 됩니다. 기회주의자처럼 사태를 관망하다 시위대에 발목을 붙들려 빗속에서 경험한 ‘이게 정말 나체화구나’ 하는 권씨의 느낌은, 사실 ‘광주대단지사건’을 온몸으로 겪어낸 철거민들의 눈으로 보면 대단히 관념적인 경험이며, 묘사입니다.
삼륜차 한 대가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 가지고는 그만 소용돌이 속에 파묻힌 거예요. … 누렇게 익은 참외가 와그르르 쏟아지더니 길바닥으로 구릅디다. 경찰을 상대하던 군중들이 돌멩이질을 딱 멈추더니 참외 쪽으로 벌떼처럼 달라붙습디다. 한 차분이나 되는 참외가 눈깜작할 쌔 동이 나 버립디다. 진흙탕에 떨어진 것까지 주워서는 어적어적 깨물어 먹는 거예요. 먹는 그 자체는 결코 아름다운 장면이 못 되었어요. 다만 그런 속에서 그걸 다투어 주워먹도록 밑에서 떠받치는 무엇이 그저 무시무시하게 절실할 뿐이었죠. 이건 정말 나체화구나 하는 느낌이 처음으로 가슴에 팍 부딪쳐 옵디다. 나체를 확인한 이상 그 사람들하곤 종류가 다르다고 주장해온 근거가 별안간 흐려지는 기분이 듭디다.
당시 철거민들이 처한 참혹한 현실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조금 어색한 묘사입니다.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그들에 대한 이해 없이 읽으면 나체화라는 표현은 턱없이 관념적인 묘사로 읽힙니다. 이러한 시점의 불확실성을 두고 한편에서는 이 소설의 한계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만, 《아홉 켤레…》는 당대를 살아가던 소시민의 삶과 의식을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어쨌든 이 경험을 통해 철거민들과 애써 유지하려 했던 거리감이 권씨에게서 일시에 사라져버리죠. 그리고 자신이 하는 행위조차 제대로 인식 못할 만큼 본능적인 행동에 이끌립니다. 그리하여 그는, ‘사찰 대상자’라는 꼬리표를 단 채 도시빈민의 처지로 추락하게 돼요.
《아홉 켤레…》는 확실히 포커스를 한 발만 잘못 내디뎌도 빈민의 삶으로 곤두박질할 수밖에 없는, 소시민의 내면에 맞추어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권씨는 인텔리 소시민의 의식을 지닌 채 살아가는 도시빈민으로, 소시민의 전형적인 이중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가 하면, 산업화 현실 속의 도시빈민의 삶을 드러내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이지요. 권씨의 삶을 점차 이해하게 되는 관찰자 오 선생도 꽤 비중있는 인물이죠. 권씨보다는 형편이 좀 낫지만, 오 선생 역시 소시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오 선생은 “부자는 경멸해도 괜찮은 것이지만 빈자는 절대로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들 동준이 놀이 삼아 고물상 아들에게 개처럼 과자를 받아먹게 하는 행동에 격분하고, 문간방 권씨네를 위해 쌀이나 연탄을 대주고, 권씨 부인의 병원비를 대신 내주기도 하지요.

오 선생은 끊임없이 스스로의 양심을 돌아보는 사람이에요. ‘찰스 램과 찰스 디킨스’에 대한 비유도 인상적이죠. 이름도 똑같고,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문학작품으로 빈민가의 삶에 연민을 쏟았다는 점에서도 두 소설가는 똑같았지만, 두 사람의 진짜 삶에서는 차이가 있었어요. 램은 평생 글과 일치하는 삶을 살았지만 디킨스는 나중에 풍요로운 생활을 하게 되자 빈민가 어린이를 지팡이로 쫓아버렸다는 사실을 들면서, “…램이 옳다면 디킨스가 그른 것이고, 디킨스가 옳다면 램이 그르게 된다. 가급적이면 나는 램의 편에 서고 싶었다. 그러나 디킨스의 궁둥이를 걷어찰 만큼 나는 떳떳한 기분일 수가 없었다.” 라고 말해요.
램의 삶이 옳다고 받아들이지만, 디킨스로 대별되는 현실적인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비유하고 있지요.
권씨의 삶을 이해하는 한편, 음으로 양으로 권씨 일가를 돕고 있지만, 오 선생은 한편으로 이러한 행위가 사실은 “자기 자신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는 것임을 솔직히 자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자조적으로 말합니다. 그의 자기반성은, 근본적인 차원에서 지식인의 선행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라는 문제제기를 담고 있어요. 왜냐하면 개인적 선행이란 자신의 이해관계와 배치하지 않을 때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이들의 선행으로는 이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저자의 잘못을 꼬집어 가르치려 했던 자존심 강한 사내 권기용은 출판사에서도 쫓겨나 공사판으로 내몰립니다. 설상가상 뱃속의 아기가 탯줄을 감고 있어 권씨의 아내와 아기 모두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죠. 권씨는 할 수 없이 오 선생에게 돈을 꾸러 갔지만 뾰족한 대답을 얻지 못하자 강도로 분해 한밤중에 오 선생의 집에 들어갑니다. 오 선생은, 강도가 다름 아닌 권씨인 것을 눈치챕니다. 권씨는 식칼을 든 자신의 본분을 잊고 문간방으로 들어가려 했고, 강도가 권씨인 것을 일부러 모른 체 할 요량으로, “대문은 저쪽”이라고 부득이하게 말해줍니다. 권씨는 자신의 정체가 탄로나자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자신의 자존심을 상징하던 아홉 켤레의 구두를 남겨둔 채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권기용. 그는 그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라진 권씨가 노동자로 굳건히 서 있는 그 세월 동안, 세상은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권위주의적인 군사정권이 권력을 잡았던 70년대도 훌쩍 넘어와 민주화 시대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정부 주도의 밀어붙이기식 개발독재는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뉴타운이라는 허울 좋은 개발정책의 그늘에서 시름에 겨워하는 철거민과 도시빈민의 문제는 여전한 것 같습니다. 경제상황이 곤두박질칠 때마다 겨우겨우 버텨오던 서민들이 빈곤층으로 몰락해가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베푸는 제반 시혜는 사회의 밑바닥까지” 여전히 고루 퍼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라진 권씨가 행복한 얼굴로 돌아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