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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 하면 <소나기>라는 작품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을 거야. 또 그의 문학적 특성에 대해 말해보라 하면 리얼리즘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고, ‘순수’와 ‘낭만성’으로 설명하면 알맞을 것도 같고…. 황순원은 한국문학에 대들보 같은 작가야. 하지만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의외로 편치 않은 구석이 있어. 섬세한 문장에 다채로운 이야기 생산 능력을 갖춘 그의 문학적 재능이 역사의 된서리에 일면 위축된 감이 있거든. 황순원은 평안남도의 지주집안 출신이었는데 어릴 때 스케이트와 바이올린 교습을 받을 정도였다니 짐작이 가지?
황순원은 해방 이후 북쪽에서 벌어진 급진적 개혁에 반발해 가족과 함께 월남해. 하지만 그의 행보는 보통 월남한 지주 출신 지식인의 행보와 달랐어. 월남한 지식인이 대부분 반공적 성향을 보이며 반공이념의 선전자 노릇을 한 경우가 많았는데, 황순원은 오히려 ‘좌익적 성향’을 드러내는 소설을 발표하게 된단다.
근데 그 ‘좌익적 성향’이란 표현이 참 복잡 미묘하군. 당시 우리 민족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좌익적’인 거로 평가받던 시대였어. <목넘이 마을의 개>도 ‘좌익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인 건데, 지금 여러분이 보면 참 웃기는 평가 아냐?
아무튼 이 때문에 황순원은 1949년 당국의 강압에 보도연맹에 가입하는 수모를 겪게 돼. 보도연맹은 좌익운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로 구성된 반공단체야. 예민한 촉각을 가진 작가로서는 간단히 겪어낼 수 없었던 체험이었을 거야. 그래서 이후 남한에서의 그의 삶과 문학을 보면, 강박관념에 짓눌린 흔적이 있단다. 해방 이후 권력을 잡은 군부는 오랜 세월 반공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사상적 자유를 탄압했고, 북한 출신인 그로서는 자기검열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도 같아. 슬픈 현실이야. 만일 그가 사상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다면 다른 색깔의 작품이 창작되었겠군, 하는 생각이 스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