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정한 남자가 건반 앞에 있다. 동그랗게 등을 만 그의 모습이 피아노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꼬무락거리며 그가 움직이자 섬세한 선율이 샘솟는다. 너무나 섬세해서 귀를 열면서도 숨을 크게 내쉬기 어렵다. 가만가만 하던 연주는 점점 고조돼간다. 고조돼가는 열정이 소리로, 소리를 담은 영상으로 그대로 전해져온다.
얼마 후, 예의 허밍이 피아노 선율에 섞인다. 녹음기사들을 난처하게 했던 그의 허밍. 그는 왜 건반을 연주하며 흥얼거리듯 음을 짚어나가는 걸까. 물론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하지만 1981년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Herbert Gould, 1932~1982)가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바흐의 골든베르크 변주곡>을 듣고 보면서,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혼연일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다!’ 건반을 연주하는 그의 몸도 하나의 악기요, 그의 허밍 역시 하나의 ‘연주’였다!
그의 기벽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구부정한 몸을 비비 틀며 음악에 홀린 듯 쉴새없이 허밍을 읊조리는 연주방식이라든가, 콘서트라면 절레절레 도망갈 궁리만 하다 일찌감치 일절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콘서트를 접었다든지(32세), 그의 아버지가 만들어주었다는, 다리가 고무로 된 연주용 의자(연주할 때의 특이한 몸짓은 이 의자 때문이었다)와 애용했던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실어나르며 연주회를 다녔다는 일화 같은 것은 기벽으로 보기도 어려울 정도다.
글렌 굴드는 1932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피아니스트로, 평생 결혼하지 않고 홀로 50년의 생애를 보냈다. 그리고 그의 일상적 행동들은 보통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기이한 버릇'으로 가득 차 있었다. 따뜻한 뉴욕의 6월에 베레모를 쓰고 두터운 코트에 머플러, 장갑까지 끼고 나타나는가 하면, 에어콘이 있는 식당은 가지 않았으며, 사람들과 악수도 하지 않았고, 전화 통화 중 상대가 감기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면 감기가 옮는다며 전화를 끊을 정도였다. 그는 그만큼 결벽증과 노이로제가 극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