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꼬마 숙녀 뒤 프레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캐치’한다. 무수한 소리들 중에서 첼로 소리를 짚는다. 꼬마 아이는 교사이며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에게 바로 ‘그 소리’를 내고 싶다고 했고, 어린 뒤 프레는 첼로를 배우기 시작한다. 세상의 모든 천재가 그렇듯, 뒤 프레의 음악 수업은 금세 스승도 따라갈 수 없는 천재성을 보여주었다.
“내가 이룬 업적과 동등한, 아니 그 이상을 해낼 수 있는 젊은 세대 유일한 첼리스트.”
현대 첼로의 화신이라 지칭되는 로스트로포비치가 뒤 프레를 두고 한 말이다.
뒤 프레는 수많은 거장들의 가르침을 받고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고, 마침내 첫 협주곡 데뷔 무대에 오른다. 1962년,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주 무대에 올랐다. 이때 연주한 곡이 바로 <엘가의 첼로 협주곡>이다. 뒤 프레에 대해 탐색하다 유투브에서 <엘가의 첼로협주곡> 연주를 보고 들었다. 음악에 별다른 조예가 없는 탓에 함부로 평할 수는 없지만, 묵직한 첼로 음색이 귀를 열고 들어와 심장에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순간순간 첼로 현을 찢어낼 듯 튕겨내는 강렬함은 선 굵은 붓터치를 보았을 때의 벅찬 열정과 자유로움을 느끼게 했다. 이후 뒤 프레는 1965년 EMI에서 존 바비롤리와 이 협주곡을 레코딩해 일약 스타로 부상한다. 젊음의 만개와 더불어 음악의 꽃이 현란하게 피어난다.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신들린 듯 연주하는 뒤 프레. 비평가들은 한결같이 “그녀는 날 미치게 한다”고 평했다. (세세한 음악적 업적에 대한 것은 생략한다.) 이렇게 모든 것이 만개할 무렵, 또 하나의 축복이 시작된다.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