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는 필요한 물건이나 상품을 사서 쓰는 행위다. 마트나 시장, 쇼핑몰에 진열된 물건(재화)뿐만 아니라 손톱 손질이나 의사의 진료 등 서비스(용역) 이용도 소비에 포함된다. 다 아는 얘기다. 그렇다면 현대를 굳이 ‘소비사회’라고 부르는 이유는 뭘까? 소비라는 단순한 행위가 너무 큰 의미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대량생산된 상품을 끊임없이 소비해야 유지되는 사회다. 더 많은 상품을 소비하게 만들기 위해서 기업은 당연히 다양한 환상을 만들어 대중을 설득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품이 아닌, 상품에 입혀진 이미지를 소비한다. 5000만원을 훌쩍 넘는 파텍 필립 같은 고급 시계는 시간을 알려준다는 시계의 사용가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품이다.
세상엔 이와 같은 상품들이 넘쳐난다. 상품은 사용가치를 넘어 화려한 이미지의 옷을 입었고, 우리는 이 이미지에 이끌려 상품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갖는다. 소비는 단순히 필요한 것을 사서 쓰는 행위가 아니요, 자신의 취향을,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과시하는 행위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더 좋은 가구 등을 욕망한다. 이 욕망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벌어서 원하는 물건을 얻는 일이 삶의 목표로 굳어졌다. 소비사회가 만들어 낸 신화에 이끌려 끝없이 소비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현대사회를 소비사회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처럼 소비 행위가 우리의 의식과 행동양식, 자신의 계층을 드러내는 중요 요인이 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물건에는 고유한 사용가치가 있다. 냉장고의 사용가치는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해주는 것’이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사회로 오기 전, 물건이 귀하던 시절에는 이 사용가치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 사용가치는 크게 매력적이지 않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냥 냉장고가 아니라 ‘별그대’의 천송이가 과음 후 마시는 탄산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천송이 냉장고’다. 천송이가 사용하는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천송이’스러워진다고 느낀다. 천송이처럼 ‘유니크’하고 ‘럭셔리’하다는 것을 주변에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자동차는 어떤가. 안전과 속도라는 고유의 사용가치보다는 어떤 차를 소유했는지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주변의 시선이 더 중요해졌다. 그래서 ‘한국에서 페라리는 고속도로를 200km로 달릴 때보다 길 막힌 강남역 사거리에서 빛을 발한다. ’ 국내 승용차 시장의 소비구조를 보면 급속도로 대형화되고 있다. 1995년 2.7%에 불과했던 대형 승용차 비중이 2006년에는 24.3%로 증가했는데, 그 이유는 한국의 소비자들이 승용차를 사회적 지위와 연계시키는 성향이 매우 강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대의 모든 상품은 사회적으로 의미가 부여된 ‘기호가치’를 갖는다. 옷, 신발, 가방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어떤 음료를 마시느냐에도 기호가치가 들어 있다. 기호가치는 다른 말로 하면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