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은 분명 올바른 것이고 선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누군가 ‘도덕’을 들먹이며 이야기하면 따분할 뿐만 아니라 반발심도 생기지요. 또 사람을 평할 때 ‘너무 도덕적이야’라는 말은 앞뒤가 콱 막힌 고리타분한 사람이란 뜻으로 들립니다. ‘도덕’이라는 게 겉은 그럴 듯한데 현실은 그와 전혀 다른 것 같아서 별로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도덕적 가르침이 공허하게 다가옵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하듯 국가 간에도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만일 옆 친구가 칼을 갖고 다니며 위협을 하므로 나도 내 몸을 지키기 위해 학교에 칼을 가져와도 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안 된다고 할 겁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요? 이웃 나라가 군비확장을 할 때 우리도 군비를 증강하는 정책은 왜 올바르지 않은지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교와 사회가 도덕과 윤리를 앞세우며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이 쉽게 따라주지 않습니다. 더구나 도덕과 윤리는 곧잘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평가하는 무서운 잣대가 될 때도 많습니다.
왜 이런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윤리란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입니다. 왜 사람들이 윤리적이어야 하는지, 왜 올바른 사람이 되려고 하는지, 이때의 ‘올바름’은 무엇인지 철학적으로 고민해봐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조건 도덕적인 규범을 강요하기 때문에 은연중에 우리는 도덕과 윤리를 함부로 대합니다. 또한 도덕적 규범들은 나라마다 개인마다 민족마다 다르고 이로 인한 충돌이 잦은데, 이때 생각의 중심을 잘 잡고 적합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윤리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윤리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윤리학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다루는 삶의 철학입니다. 윤리학을 통해 철학적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윤리적 지식이 필요한데요,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지금 청소년기에 있는 학생들의 부모 세대는 학교 다닐 때 ‘도덕’이라는 과목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윤리’라는 과목으로 바뀌었지요. 윤리와 도덕, 같은 건지 다른 건지 헛갈립니다. 영어로 도덕은 ‘morality’이고, 윤리는 ‘ethics’인데, 국어사전 풀이를 봐도 그 말이 그말 같습니다.
도덕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의 총체’이고 윤리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라고 돼 있군요. 도덕과 윤리는 의미 차이가 조금 있습니다만, 윤리학에서는 굳이 구분해서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윤리학에서는 도덕·윤리, 도덕규범·윤리규범, 도덕판단·윤리판단 등 별 차이 없이 사용하고 있지요.
그렇다고는 하지만 현실에서는 두 단어의 쓰임새가 조금 다릅니다. 도덕은 윤리에 비해 개인 행위자에게 더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행위자 스스로 결정하는 가치판단의 문제이며 자기규율, 자기반성, 양심을 요구하는 개인적인 문제라는 것이죠. 예를 들면,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도덕적인 행동이다’ 라는 문장을 볼까요? 가난한 사람을 돕느냐 돕지 않느냐는 개인적 판단의 문제이고, 도덕적이지 않다고 해서(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을 받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도덕은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생각에 대해서까지 도덕적이냐 아니냐를 따집니다. 별 이유 없이 친구를 마음속으로 시샘하고 미워하고 비난하는 행위에 대해 도덕적이지 않다고 말하죠. 한편 윤리는 사회를 지키기 위한 타율적인 지침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낙태 논쟁에 대해 말할 때, 낙태가 윤리적이냐 아니냐라고 의문을 던지지 낙태가 도덕적인가라고 묻지 않습니다.
또 도덕은 윤리의 근거요, 윤리의 정당성은 도덕에 의해 검증을 거쳐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도덕이 더 상위 개념은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도덕과 윤리는 개념적 차이가 있긴 하지만, 삶의 양식으로서, 학문의 영역으로서 이 둘을 구분해서 쓰지는 않아요. 윤리학은 도덕철학moral philosophy이라고도 합니다.
강추!
《그렇게 살라는 데는 다 철학이 있다》 이창후 지음 | 좋은날들 펴냄
글쓴이의 경험과 풍부한 사례를 가지고 청소년들이 이해하기 쉽게 윤리학에 대해 설명한 책.
“어떤 사람들은 윤리학 책을 읽고서도 그 지식을 삶에 잘 활용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윤리학 책에 쓰여 있는 내용을 암기하기만 하고 철학적 지혜를 얻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것은 마치 미술을 공부하면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지는 않고 그림들을 외우기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법이 윤리학에서의 철학적 지혜와 같아요.”
인간 사회에 윤리라는 게 왜 필요했을까요? 이에 대한 하나의 해답은,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구성원이 열 명인 인간 집단이 있는데 불행하게도 사냥 등으로 얻은 노획물이 부족해 열 명의 배를 다 채울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은 불안정하고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배를 채우고 싶다는 욕구와 감정이 행동의 동기가 된다면 힘이 센 순서대로 먼저 배를 채우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힘 센 사람 서너 명이 전부 먹어치울 것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굶어 죽게 돼 결국에는 그 집단의 존속 자체가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를 조금 어려운 말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사회적 자원은 희소하고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쟁을 하게 만들지요. 그래서 불가피하게 이해갈등을 조정해야 합니다. 이때 도덕윤리은 이해갈등을 호소하는 법정이고, 욕구충족을 위한 합리적인 수단인 것입니다. 내 배만 채우고 다른 사람이 굶어 죽게 하는 것이 도덕에 위배된다는 규범이 이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규칙을 법으로 정하고, 도덕은 인간의 공동생활을 순화시키고 삶의 질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도덕은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우해야 할지를 지배하는 일종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그 규칙을 따른다는 조건 아래서 각자 서로의 이익을 위해 그 규칙을 받아들이기로 한 합의인 것이죠. 이를 외재론 도덕이라 부릅니다.
윤리에 대한 또 하나의 관점은 앞의 설명과 조금 다릅니다. 인간의 동기가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인간은 본성적으로 도덕적으로 사유하고 성찰할 수 있는 도덕적인 존재로 봅니다. 인간이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것은 바로 인간에게는 윤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즉, 배고픈 사자는 본능적으로 눈앞에 있는 얼룩말을 잡아먹으려고 하지만 인간은 배가 고파도 다른 사람의 음식을 함부로 빼앗거나 훔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윤리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핵심적인 특징이라는 관점입니다. 이를 내재론 도덕이라고 합니다.
외재론 도덕은 도덕적 현실주의를 지향해서, 도덕이란 ‘삶의 제도’ 중 하나로 사회적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봅니다. 반면에 내재론 도덕은 도덕적 이상주의를 지향하며, 도덕적 최고 선은 공리적 목적이 아닌, 인간다움의 구현이며 도덕적 선의 실현이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