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의 출발은 혹독했다. 1945년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후 불과 5년 만에 한국전쟁1950년이 벌어져 나라 전체가 초토화되었다. 민가는 물론 공장, 발전소, 도로 등 대부분의 생산 시설이 파괴됐고, 나라 전체가 굶주림과 가난에 허덕였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경제개발에 나섰다.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국가 주도 경제성장을 추진, 1990년대 초까지 30여 년 동안 연평균 8% 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뤘다. 가히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 만한 성과였다.
자본도, 기술도, 자원도 부족했던 전후의 한국은 어떻게 이렇게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을까? 그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외국으로부터 경제 원조를 받아 저렴한 양질의 노동력을 동원해서 수출주도의 전략을 세운 것. 이 중 저렴한 양질의 노동력을 모으기 위해 한국 정부는 농촌에 있는 노동 인구를 산업생산지, 즉 도시로 끌어모았다.
동시에 한국 정부는 저곡가 정책을 펼쳤다. 이승만 정부 이후 농산물 수매(농산물 수요·공급 조절을 위해 농산물 가격을 미리 정해 일정량을 정부가 사들이는 것) 가격은 계속 낮은 수준이었고, 1966년에는 정부가 국회 동의 없이 곡물 매입 가격을 이전보다 낮게 책정하기도 했다. 저곡가 정책은 노동력 확보를 위해 두 가지 면에서 중요했다. 첫째, 저곡가 정책으로 농촌에서 살기 어려워진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유입되기 시작했으며(1965년~1969년 농가소득 증가율은 도시 가구 대비 4분의 1 수준이었다) 둘째, 공장에서 저임금으로 노동자를 고용하려면 생활비를 낮춰야 하므로 먹거리 비용이 높아서는 안 되었다.
한편 경제개발 초기, 박정희 정부는 경공업 발달을 위해 전후 그나마 사회기반시설이 남아 있던 수도 서울에 초점을 맞췄다. 1966년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 제1단지가 서울 구로동에 개발된 이래 서울과 인천에 공업단지 6곳이 조성됐다. 그러자 공장에서 일해 돈을 벌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인구가 많아지니 서울에는 각종 서비스직 일자리도 늘어났다. 게다가 1970년대 말 외국산 농산물 수입이 본격화되자 농촌 가계는 더욱 위태로워졌고, 이를 체감한 많은 젊은이가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했다. 1960년대 농업에 종사하던 사람은 전체 인구의 60%를 차지했지만, 1970년대 농촌 인구는 30%가량으로 줄었고 이 시기 매년 60만 명이 서울로 이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