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인 파리>라는 꽤 근사한 영화가 있다. 영화가 시작되고 3분 동안 카메라는 가만히 파리를 비추는데, 파리에 대한 사람들의 로망을 풍선처럼 부풀려놓는다. 필름에 담긴 아름다운 파리가 시드니 베쳇Sidney Bechet의 재즈 선율 위로 흐르는, 더할 나위 없이 낭만적인 영화다. 파리에 잠시 다니러 온 할리우드 영화 대본작가인 주인공 길 펜더는 미드나잇(밤 12시)에 파리의 한적한 골목을 걷다 1920년대의 파리로 타임슬립을 한다. 콜 포터의 음악이 흐르는 파티에서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젤다를 만난다. 뿐만 아니라 헤밍웨이, 거트루드 스타인(미국의 작가요 시인이며 현대 예술의 대모), 살바도르 달리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예술가들을 만난다. 주인공이 타임슬립한 그 시대, 그때를 일명 황금시대, 재즈시대Jazz ages라고 부른다. 재즈시대란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 재즈와 댄스 음악이 대중화된 1920대를 말한다.
‘재즈시대’라? 낭만적인 이름이 붙긴 했지만, 사실은 낭만과 평온과는 거리가 먼 시대였다.
인류는 1914년 1차 세계대전을 치른다. 역사 이래 수많은 전쟁을 치렀지만, 이렇게 충격적인 적은 없었다. 사상자 수가 3200만명에 이르고, 유럽 곳곳의 도시들은 전쟁의 상흔으로 폐허로 돌변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인간 문명의 야만성에 경악했고, 절망했다. 뿐만 아니라 전후극심한 인플레에 시달렸으며, 전쟁 빚을 걸머진 곳도 있었고, 점점 불길이 세지는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불안을 극심하게 겪고 있었다. 유럽은 자랑해마지 않던 서구 문명에 대해 깊은 회의에 빠졌다. 대규모 인간 살상을 서슴지 않고 한순간에 폐허로 바뀌어버린 자신들에 대한 절망. 우울하기 짝이 없는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재즈시대는 이런 유럽의 분위기와는 많이 달랐다. 적어도 겉으로 봤을 때 미국은 1차 대전 이후 여러 가지 긍정적인 결과를 손에 쥐었다. 세계 정치에서 미국의 입지는 훨씬 단단해졌으며, 1차 대전의 상흔(傷痕)이 유럽 전역을 뒤덮고 있는 동안 미국은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다. 미국은 그야말로 소비사회의 아이콘이었다. 웬만한 가정마다 냉장고, 세탁기, 진공청소기 등을 갖추고 있었고 자동차 보급률도 굉장히 높았다. 특히 상류 계층으로서는 재산을 불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증권 시장은 활황이었고, 고급 승용차가 넘쳐났으며, 누구나 꿈을 꾸면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시대였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검은 돈, 비합법적인 돈들이 거래됐고, 불법적인 혹은 합법을 가장한 불법적인 방식으로 부를 쌓은 사람들이 많았다. 금주법이 내려졌고, 갱들이 무법천지처럼 활개를 쳤으며 돈이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황금만능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사람들 사이에 넓게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