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배출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정작 재활용되는 것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 소비자가 분리배출 이외에 마땅히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안 쓰고 안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안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생산자가 생산단계에서부터 재활용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제품의 설계·생산단계에서 환경친화적인 소재를 선택하는 일, 디자인·포장 개선 등을 통해 폐기물 발생량을 원천적으로 줄이는 일, 자체 판매망을 활용한 회수체계를 구축해서 재활용을 활성화하는 일…. 생산자야말로 이런 일들을 해내기에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산자책임재활용(EPR: 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제도’라는 것이 있다. 생산자에게 제품이나 포장재의 재활용 의무를 더 많이 부여하기 위해 시작된 제도로,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시행 중이다. 문제는 이 제도에도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 재활용의무를 면제받는 사업장의 범위가 너무 넓다. 국가가 나서서 매출과 사업 규모가 일정 수준 미만인 사업장의 재활용 책임을 면제해준다. 영세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폐기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기준이 아닐 수 없다. 국가가 보조금을 마련해 영세업자를 지원하는 한이 있더라도, 재활용 의무는 부과해야 하는 것 아닐까?
둘째, 우리나라 EPR 제도에서는 생산자의 비용부담 범위를 재활용 선별단계 이후로 제한하고 있다. 즉, 재활용품 수거와 선별에 대한 책임은 없다. 독일의 경우 재활용 원료를 사용해 제품을 생산한 최초 생산자가 재활용품 수거부터 재활용 처리(재활용 제품 제작)에 이르기까지 소요되는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이를 재원으로 삼아 재활용 처리 기업은 물론 재활용 수거에 관여하는 주민단체, 민간 재활용 수거업자, 심지어 지방자치단체에까지 보조금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유통업자(슈퍼마켓, 편의점 등 재활용이 필요한 제품을 유통하는 업자)에게는 재활용품 회수 의무를 부여한다.
가장 좋은 해법은 안 쓰고 안 버리는 것이지만 이 캠페인만으로는 지금의 환경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 ‘분리배출 잘하기’ ‘일회용품 안 쓰기’도 중요하지만 환경정책 개선을 위해 시민의 힘을 보여줘야 할 때다. 정부를 압박해 제품을 만들 때부터 재활용 가능한 소재를 사용하도록 강제하고, 재활용 소재라면 실제로 재활용될 때까지 드는 비용을 생산자가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만약 이를 어겨 환경을 오염시켰을 때는 징벌적인 수준의 환경부담금을 부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