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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도시 벗어나기

도시에 색을 입히다 <2부>

2000년,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에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회색 건물이 오렌지색 옷을 입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덩달아 범죄율도 줄고, 세금 납부율이 높아졌다.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는 회색 일색이다.
화려한 조명도 차가운 콘크리트를 미처 감추지 못한다.
도시에 색을 입히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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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점 05  화려한 조명이 말하지 않는 것

도시가 회색이라고? 말도 안 돼. 오히려 색이 너무 많아서 번잡한데? 색색의 조명에 물든 도시 경관이 얼마나 끝내주는데! 이런 생각을 했다면 화려한 네온사인과 색색의 간판들이 불러오는 기억을 따라, 그것들이 주로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는 곳인지 생각해보자.

도시에서 화려한 네온을 뽐내는 곳은 대개 소비를 위한 공간이나 부유한 동네의 이름 있는 아파트다. 강남 한복판은 세상의 모든 색을 모아놓은 듯 어둠이 깃들면 새벽을 맞을 때까지 화려한 빛을 뽐낸다. 사람들의 발길과 눈길을 붙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브랜드를 각인시키고, 구매를 충동하기 위한 시각 메시지를 전달하느라 분주하다. 이때 우리는 본질적 존재 그 자체로 대우받는 게 아니라 소비자로서 대상화될 뿐이다.

눈부신 조명들이 현란한 거리를 걷지만 나는 이 도시의 주인 같지는 않다.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열 평 남짓의 작은 방과 책상 하나, 학교 도서실의 빈 자리 하나 정도다. 나머지 공간은 거의 ‘시간’별로 쪼개서 구매해야 한다. 5000원짜리 커피 한 잔으로 세 시간 앉아 있을 공간을 사고, 만 몇천 원으로 영화 한 편을 보면서 두 시간 동안 사용할 좌석을 구매한다. 이 화려한 도시는 결국 나를 위한 곳이 아니요, 소비를 통해서만 소유할 수 있는 자본적 공간이다. 따라서 화려한 도시 조명 역시 회색도시의 무관심만큼 인간을 배려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한편 도시 조명은 ‘빛 공해’를 유발한다. 밤새 꺼지지 않는 불빛 때문에 집집마다 암막커튼을 내리고 산다. 우리나라는 전체의 89.4%가 빛 공해 면적이라는데,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다.(1위 이탈리아, 미국관측위성 수오미NPP, 2016년) 빛 공해는 유방암, 전립선암, 수면장애 등을 일으켜 인체에 유해하다. 이렇게 화려한 공간이 도시 한복판을 차지하는 반면에  조명조차 없는 공간들이 변두리에 자리한다. 사회적 약자가 머무는 공간일수록 색채를 찾기 어렵다.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필요 없이 주어진 기능을 수행하는 데만 그치는 공간들은 최소한의 형태와 기능만 갖추면 된다는 생각으로 방치한다. 
우리의 도시는 아름답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간판의 색감들, 밤새 빛을 밝히는 조명들. 그러나 그 화려한 아름다움은 인간의 존엄을 위한 것이 아닌, 자본과 경제적 가치만을 추구할 뿐이다. 

 논점 06   우리의 색, 우리의 정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