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없는 수박’은 우장춘 박사(1898~1959)가 만든 게 아니고, 우 박사와 친분이 있던 일본인 교수 기하라 히토시의 작품이야. 우장춘 박사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개량 종자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씨 없는 수박을 소개했는데, 그게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끈 거지.
하지만 그가 유전학에 매우 큰 업적을 남긴 인물임은 분명해. 1935년 우장춘은 유채의 새 품종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유채가 배추와 양배추의 교접으로 탄생한 자연 잡종 작물인 걸 발견하고 이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어. 배추와 양배추를 수없이 교접한 끝에 유채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한 우 박사가 이들의 염색체 수를 비교해 보니, 배추의 염색체는 10개, 양배추의 염색체는 9개, 그리고 유채의 염색체 수는 배추와 양배추의 염색체 수를 합한 19개였지. 그 말은 서로 다른 종자 간의 교배(이종교배)로 새로운 종이 탄생할 수 있는데, 이는 각각의 종자가 지닌 세포 내 염색체 수가 더해지기 때문이라는 걸 뜻했어. 이종교배는 불가능하다는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획기적인 발견이었어.
이 논문으로 우장춘 박사는 도쿄제국대학 박사학위를 받았어. ‘우장춘의 트라이앵글’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 학설은 지금도 유전학 교과서에 실려 있어. 당시 박사학위는 일본인들도 받기 어려웠기에 우장춘의 박사학위 수여 소식은 일본 현지 언론에 대서특필됐어. 게다가 우장춘은 조선인 출신으로, 정식 학생이 아닌 유학생 과정으로 대학 과정을 마쳤기 때문에 더 화제가 됐지.
식민 해방 후 1950년 3월 8일, 우장춘 박사는 일본에 가족을 남겨두고 홀로 한국으로 돌아왔어. 해방 직후 한국은 식량난이 매우 심각했어. 일제 식민통치 시기에 우리 농업은 전부 일본의 농작물 종자에 의존해 왔거든. 일본은 패망 직후 그 종자들을 전부 가지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버렸고.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농사 기술은 고사하고 변변한 종묘장 하나 없었어. 몇몇 농가에서 작물을 길렀지만 생산성이 높지도 않았고, 품질도 안 좋았어. 우장춘 박사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자신의 전공이었던 ‘채소’ 분야부터 파고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