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읽기 |
《데미안》은 1919년 출판에 앞서 같은 해 2월부터 4월까지 피셔 출판사의 한 잡지에 세 차례 걸쳐 나누어 연재되었다. 작가의 이름은 헤르만 헤세가 아닌 에밀 싱클레어. 헤세는 이미 알려진 자신의 이름 대신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이 작품에 강렬한 인상을 받은 토마스 만은, 깜짝 놀라 발행인에게 당장 편지를 보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말씀 좀 해주십시오. 에밀 싱클레어가 누굽니까?”
그로부터 30년 후(1948년), 《데미안》의 두 번째 영역판 서문에서 토마스 만은 당시의 느낌을 이렇게 적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싱클레어라고 하는, 베일에 싸인 어떤 작가가 쓴 《데미안》이 일으킨 전류와도 같은 영향을 잊을 수가 없다. 이 작품은 무서울 만큼 정확하게 시대의 신경을 포착하고 있으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그들에게 주는 사람이 이미 마흔두 살의 어른이었는데도) 자신들의 한가운데서 자신들의 깊은 생을 예고해주는 사람이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 전체를 감사와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다.”
어떤가? 현재의 우리들에게 《데미안》은 열 살 소년 싱클레어의 성장기로 읽힌다. 더불어 그의 성장기가 일반적인 통과의례처럼 보이는, 하나의 전형성을 담보한 탓에 ‘데미안’하면 청춘의 비밀스러운 떨림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토마스 만의 글을 보니, 《데미안》이 발표된 당시 독일의, 혹은 유럽 젊은이들의 느낌은 우리의 그것에 비해 한층 더 격렬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