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은 암 치료에 관한 한 세계적인 수준에 와 있다. 진단이 빠르고 정확해졌고, 고가의 항암제가 개발돼 치료 성과도 좋고 생존율도 높아졌다. 20~30년 사이 암치료가 발달해 말기 암인 경우도 임상시험 중인 항암제를 써보고 수술도 하는 등 적극적인 치료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치료하면 며칠에서 한두 달, 드물게는 1, 2년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수천만 원에 육박하는 치료비가 든다는 문제가 있다. 더 큰 문제는 끝도 없이 치료에만 매달릴 뿐 암 환자의 극심한 통증 관리에는 소홀한 경향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사람을 죽게 만드는 고통은 얼마나 극심한 걸까?
말기 암 환자의 통증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극심한 통증 때문에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실제로 암 등 만성질환자의 자살 위험이 일반인에 비해 크게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립암센터 암관리정책학과 교수팀이 2010~2012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참여자 가운데 19세 이상 1만 9599명을 대상으로 만성질환자의 자살 시도 위험과 자살 생각을 조사한 결과, 일반인에 비해 암 환자의 자살 시도 위험이 3.3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말기암 환자 중 80~90%가 심한 통증으로 일상 생활 자체가 힘들다. 그런데 더 답답한 것은 통증을 이해하지 못하는 의사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암은 심한 통증을 일으키는 병이니 참고 견뎌야 한다고 어떤 의사들은 말한다. 환자들이 아픔을 이겨내지 못해 병실에서 떼굴떼굴 구르면 주치의는 무표정한 얼굴로 지나가버리고 뒤따라온 수련의들이 한바탕 호통을 친다. ‘그런 고통쯤은 이겨내라!’는 것이다.
가족들이 울먹이며 환자를 부둥켜안고 다독인다. 의사 지시를 잘 따르지 않으면 다음 치료가 까다로워질 것이라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서울 시내 중심지 한복판에 있는 큰 종합병원에서도 자주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다. _<해피엔딩, 우리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
암 환자들은 죽음보다 통증이 더 무섭다고 말한다. 하지만 의료진은 환자의 통증에 대해 무덤덤한 경우가 많다. 모르핀을 포함해 통증을 진정시켜줄 진통제 처방도 주저한다.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탓이다. 가족들의 무지도 거든다. 모르핀 주사를 놓으면 환자가 중독 상태에 빠진다는 잘못된 선입견이 많아서다. 국립암센터 윤영호 박사는 말기 환자가 중독을 우려해 격심한 통증을 견뎌야 할 이유가 없으며, 그것은 고문이나 마찬가지라고 잘라 말한다. 또한 그는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의사의 경륜 차이가 아닌, 자질의 문제라며 통증 이해를 비롯해 임종환자돌봄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병동이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들은 많겠지만 대부분의 암 환자와 일반인들은 호스피스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 특히 말기 암 환자들은 대개 호스피스 병동을 ‘죽으러 가는 곳’으로 인식한다. 우리나라는 호스피스 완화치료에 대해 이해 정도가 낮은 편이다.
호스피스 완화치료는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으로 이루어진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팀이 통증을 비롯한 환자의 증상을 적극적으로 조절해주는 한편, 환자와 가족의 심리적, 사회적, 정신적인 고통을 줄여서 말기 환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임종을 잘 준비해 한 사람의 인생을 정리하도록 돕는 활동이다.
고칠 수 없는 병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다는 것은 끔찍한 고통이다. 죽음보다 더한 통증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 생명에 대한 애착, 회한, 가족과의 이별, 후회 등 생의 마지막 길은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고통스럽다. 호스피스 완화치료는 전문가들이 힘을 합해 말기 환자들이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돕는다.
‘세계 죽음의 질 지수’ 1위 국가인 영국의 경우 말기암 환자의 95%가 호스피스를 이용한다. 아시아 죽음의 질 지수 1위(2015년 조사)인 대만 역시 말기암 환자의 56%가 호스피스 병동에 머물다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6년 암 사망자 중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이용한 비율은 17.5%에 불과하다.
호스피스 활성화는 웰 다잉을 위한 현실적이고 시급한 방안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호스피스에 대한 사회인식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는 의료기관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암 환자들은 ‘빅Big 5’병원(서울대, 삼성서울, 아산, 연대, 서울성모 병원)으로 몰리는데 이 중에서 가톨릭 계열인 서울성모병원 외에는 호스피스 병동을 갖춘 곳이 없다. 일반 병상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편 2016년부터 말기 암 환자가 자택에서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건강보험이 적용돼 진료비의 5%만 내면 되지만 아직 이용률이 매우 낮은 상황이다. ‘존엄한 죽음’ 혹은 ‘임종 시 돌봄’에 대해 더 깊은 각성과 제도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아시아 ‘죽음의 질 지수’ 1위, 대만
죽음의 질 지수란 완화의료 정책, 즉 임종을 앞둔 환자의 통증과 그 가족의 심리적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의료시스템에 대해 비교, 평가하는 지표이다. 대만은 아시아 ‘죽음의 질’ 1위 국가다(<이코노미스트> 2015년 조사). 수도 타이베이 외곽에 위치한 ‘매케이 기념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힌다. 베란다가 딸린 널찍한 병실엔 환자를 최대 두 명까지 받는다. 가족들이 머물 공간도 있다. 병동 중앙엔 피아노와 소파, 책장이 놓여 병원이라기보단 고급 숙박시설을 떠올리게 한다. 환자와 간호사 비율이 1대1이고 의사 1명이 맡는 환자도 5명을 넘지 않는다. 대만 역시 말기암 환자의 절반 이상(56%, 2015년)이 호스피스에 머물다 세상을 떠난다. 암을 비롯해 루게릭병, 노인성 치매 등 8개 질환 환자의 호스피스 비용을 모두 정부가 부담한다.
안락사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정의하긴 어렵다. 심지어 안락사를 미국과 유럽에서는 존엄사라고 부르기 때문에 더 혼란스럽다. 그럼에도 용어 정리를 하자면, 안락사는 의도적인 죽음이다. 죽음에 임박한 불치병 환자가 말기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이다.
안락사의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의사가 안락사를 희망하는 환자에게 주사 등의 방법으로 직접 약을 주입해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안락사가 타살의 범주에 든다고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두 번째 방법은 안락사를 희망하는 환자에게 언제든 죽을 수 있도록 약을 처방하는 것으로, 이를 시행하는 것은 환자 본인이며 죽음의 순간에 의사가 없을 수도 있다. 의학계에서는 두 가지 중에 어떤 것이든 이러한 죽음을 ‘의사조력자살 혹은 의사도움자살’이라고 부른다.
이 문제를 좀더 들여다보자. 안락사는 환자의 상태가 가망이 없다고 판단될 때 환자의 동의하에 의사가 직접적 또는 간접적 방식으로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조치를 허용하는 것이다. 의사는 환자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동시에 그의 목숨을 끊는 약을 처방하거나 주사를 놓는다. 얼핏 살인행위처럼 보이기까지 하는데, 과연 의사에게 그런 법적 권한을 인정할 수 있을까? 의사에게 제기되는 철학적 문제이자 현실적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불치병 환자의 생존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은 의사만 할 수 있는데, 그 판단은 매우 불명확할 수 있다.
치유 불가능한 질환에 걸려 참기 어려운 고통을 견디며 생존하는 것보다 생명을 단축하는 것이 더 자비로운 행위일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선택의 권리가 온전히 환자 자신에게 있는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이론적으로 안락사에 쉽게 찬성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복잡하다. 시간과 시간이 갖는 힘, 가능성, 기술의 발달과 병의 진행 상태, 그리고 환자의 감정의 변화를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락사 허용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신중하고 냉철하게 의학의 발달 가능성, 의사의 권리, 질병 진행 상태, 환자의 상황 등을 분석해야 한다. 또한 생명과 관련된 테마이니만큼 철저하고 정확한 현실적 법규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
안락사 허용 국가
캐나다가 2016년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때의 안락사란 독물 등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생명을 끊는 행위를 말한다. 2002년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했고, 뒤를 이어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스위스, 콜롬비아가 동참했으며 캐나다는 여섯 번째로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가 됐다. 미국은 1994년 오리건을 시작으로 워싱턴, 몬태나, 버몬트, 캘리포니아에 이어 하와이까지 6개 주에서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이들 국가와 주에선 불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자발적 의지를 갖고 안락사를 원할 경우 독물주사 등
죽을 권리에 관한 국내의 논의는 연명치료 중지에 멈춰 있다. 미국에서 1970년대 중반에 있었던 수준의 논의다. 국내에서 이야기되는 존엄사와 미국이나 유럽의 존엄사는 단순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차이가 크다. <미 비포 유>라는 영화가 있다. 존엄사 논쟁을 불러온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오토바이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청년 윌은 스위스의 디그니타스에 조력자살을 신청하고, 죽음을 맞는다.
미국의 몇 개 주와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적극적 의미의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며 안락사와 관련해 새로운 소식이 계속 전해진다. 한국인 18명이 스위스에 안락사를 신청했다는 소식도 놀랍다.
2018년 8월, 스물아홉 살의 네덜란드 여성이 의사가 제공한 독약을 먹고 숨졌다. 국가가 허락한 죽음이다. 여성의 이름은 오렐리아. 오렐리아의 죽음은 새로운 논란을 불러왔다. 그동안의 안락사는 불치병 환자 중에 말기 암처럼 극심한 신체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선택이었다면 이 여성의 몸은 건강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안락사 허용국가라고 하지만 네덜란드는 왜 그녀의 안락사를 허락한 것일까?
오렐리아는 열두 살 때 우울증을 앓았고, 다른 정신과적 진단도 받았다. 경계선 인격 장애, 애착 장애, 만성 우울증, 만성적인 자살 충동, 불안감 등이었다.
그녀는 다큐멘터리에서 행복의 개념도 모르고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으며, 숨쉬는 것도 고통스러우며, 자유롭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의사들은 오렐리아의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녀는 안락사를 거절당한 이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생명의 종말 클리닉the End of Life Clinic’을 찾았고, 이곳에서 안락사를 허용했다. 2017년 네덜란드에서는 정신적 고통을 이유로 83명의 안락사가 행해졌다.
이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오렐리아의 죽음은, 안락사 논란을 넘어 스스로 죽을 권리, 즉 일반적 의미의 자살 논쟁마저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안락사와 관련한 담론은 다양하고 폭넓다. 각자의 선택을 위해서라도 우선 냉철한 논의가 더욱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