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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은 나라와 시대를 초월해 문학 비평계에서 여전히 논란이 많은 작품이다. 그 시시콜콜한 내용은 매우 전문적인데다 작품이 포괄하고 있는 주제의식에 닿기 위한 길 또한 여러 갈래라 관련 글을 쓰기에 머뭇거려진다. 그런데도 다시 <햄릿>을 읽으면서 용기를 낸 이유는 하나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햄릿’과 셰익스피어의 극 중에 살아 있는 ‘햄릿’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걸 공유하고 싶어서.
우리는 ‘햄릿형 인간’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햄릿형 인간’이란 생각이 깊고 행동이 지나치게 신중해 우유부단한 사람, 또는 과잉의식에 사로잡혀 쉽게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 즉 근대 지식인의 원형이라고도 할 내향적 성격의 사람을 말한다. 한마디로 행동하지 못하고 쭈뼛거리는 우유부단한 사람을 말한다.
햄릿이 어마어마한 비극에 휩쓸려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이유가 그가 생각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에 빚어진 비극이라고도 한다. 햄릿이 우유부단함 때문에 죽었다고? 정말 그럴까? 지나친 단견이다.
흔히 <햄릿>의 주인공 햄릿이 생각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에 결심을 할 수 없게 되어 빚어지는 비극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햄릿이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너무나도 잘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너무나도 뛰어난 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마도 세계의 모든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지적으로 가장 뛰어난 등장인물일 것이다. _<햄릿의 허무주의>(정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