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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다크 서티> ,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

<제로 다크 서티>란 제목은 군사용어로 ‘자정에서 30분이 지난 시간’을 뜻한다. 이 시간은 적군과 아군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가장 어두운 시간대라고 한다. 바로 이 시간에 미 특수부대가 적외선 카메라를 부착한 채 파키스탄에 은거하고 있던 오사마 빈 라덴을 습격, 암살했다. 영화는 빈 라덴이 사라졌어도 테러와 전쟁 같은 재앙은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여전히 우리는 ‘자정에서 30분 지난’ 가장 어두운 시간, 상호 불통의 암흑기에 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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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다크 서티>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복수에 대한 이야기다. 9·11 테러의 주범으로 오사마 빈 라덴(이하 ‘빈 라덴’)을 지목한 미국정부와 CIA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종적을 감춘 그를 찾아 나선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오가는 현장 작전은 여성요원인 마야(제시카 차스테인)가 주도한다. 빈 라덴 생포 혹은 암살 작전은 10여 년 동안의 오랜 기다림 끝에 성공한다. 마야가 포착한 단서 아래, 미국 특전부대 ‘네이비씰’이 파키스탄 모처를 급습, 빈 라덴을 사살한 것이다.

이 영화는 전쟁 드라마다. 조금 더 장르를 세분화한다면, 전쟁·첩보드라마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첩보 장르와는 많이 다르다. 일반적인 첩보 장르는 주인공의 ‘머리’와 ‘몸’이 큰 활약을 한다. 다시 말해 주인공의 ‘추리’와 ‘액션’이 첩보 장르의 핵심인 ‘긴장감’을 이끌어 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제로 다크 서티>의 스릴을 주동하는 건, 주인공의 눈부신 활약상이 아니다. 요원 ‘마야’는 현장에 투입되기 전부터 이미 CIA가 주목하는 똑똑한 정예요원이었다. 냉정한 분석력과 투철한 사명감, 터미네이터 같은 체력과 무시무시한 열정은 그가 여성임에도, 빈 라덴의 암살 작전을 떠맡을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데 영화는, 이 인재의 아까운 머리와 단련되어 있을지 모르는 액션 재능을 그냥 묵혀둔다. 

마야는 전쟁·첩보드라마의 주인공이면서도, 호신술이나 사격술을 선보일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다. 기발한 추리력과 탁월한 리더십을 펼칠 수 있는 기회 또한 박탈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