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단계 한 단계 걸어온 자신의 길을 갑작스레 되돌려버리는 경우가 있다. 삶의 급격한 전환! 마흔이 넘은 나이에 잘 다니던 대기업을 뛰쳐나와 작은 공방을 차려 액세서리를 만드는 남자도 있고, 명문대 의대를 다니다 요리에 미쳐 요리사가 되기로 작정한 여대생도 있다. 《달과 6펜스》의 뒷부분에 등장하는 아브라함도 그렇다. 외과 천재로 장학금과 상을 모조리 차지했던 그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의학계 최고 자리까지 오르게 되리라는 기대를 받는다. 그런데 그는 보건국 관리라는 하찮은 자리에 내려앉아 지지리도 못나고 늙은 그리스 여자랑 살면서 병치레하는 애들을 대여섯이나 거느리며 살아간다. 그런데도 일말의 후회 없이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
찰스 스트릭랜드의 경우는 어떤가. 그의 경우는 훨씬 극단적이다. 수입이 좋은 직업에 교양 있는 아내와 잘생긴 아들딸을 둔 중산층 집안의 가장인 그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세상의 온갖 중요한 가치들은 하찮은 것이 되어버린다. 매몰차게 가족을 버리고, 자신을 도와준 더크 스트로브를 끝없이 멸시하며, 그의 아내 블란치 스트로브의 자살에 동정심조차 내보이지 않는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보았을 때, 그는 광기(狂氣)에 사로잡힌 나쁜 남자인데, 그는 자신에 대한 이러한 비난에도 꿈쩍 않는다.
오로지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삶을 이끌던 스트릭랜드는 타이티 섬에서 나병에 걸려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그림을 그리다 죽는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왜 세상의 모든 안락과 명예를 버리고,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선택한 것일까? 대체 그 삶에서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이야기의 서술자인 ‘내’가 찰스 스트릭랜드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서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을 전혀 찾지 못했다. 손발이 큼지막하고 어깨가 떡 벌어진 사내는 사교계에 재능이 없는 것 같았고, 증권중개인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가진 훌륭한 시민이요,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로, 그야말로 선량한, 보통 남자였다. 이야기 도입부에 나오는 스트릭랜드를 보면서, 독자들은 그 남자가 예술적 광기에 사로잡힌 불멸의 화가인 주인공일 거라고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