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두 시 비행기를 타고 꼬박 아홉 시간쯤 날아와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 닿았다. 카이로행 환승을 위해 다섯 시간 정도를 머물러야 한다. 인천공항에서 이집트로 가는 직행노선은 없다. 밤새 날아왔고, 지금쯤 서울은 해가 중천에 떴을 텐데 막 동이 터온다. 유리벽 밖으로 아침 태양에 물든 여린 분홍빛 하늘이 보인다. 두고 온 나의 새벽이 떠올랐다. 그래서 시차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부다비라…. 일행은 얼굴도 서로 모른 채 뿔뿔이 흩어져 비행기를 탔는데 이국땅 대기실에 있으니 하나하나 모여든다. 그제야 만난 일행은 주섬주섬 명함을 꺼내 인사를 나눈다. 모든 것이 이토록 처음일 수가. 초면인 아홉 명의 일행, 처음 밟는 대지. 비행기에서 내리니 익숙한 모든 것과 절연돼 있었다. 유일하게 낯익은 것은 새벽 하늘뿐이었다.
이집트 여행 결정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이집트 관광청이 홍보차 한국의 미디어 관련자를 초청한 자리에 끼게 됐다. 이 여행으로 나를 안내한 친구는 이집트는 인문학적으로 콘텐츠가 많은 나라이니 함께 가자고 했다. (친구는 다른 일정 때문에 카이로에 먼저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좀 당황했다. 한 번도 이집트를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신비한 낯설음 같은, 묘한 매력을 지닌 이집트. 하지만 아는 거라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나일강이 흐르고 세계사의 첫 장을 열던 태초의 문명이 일어난 땅이라는 것 정도.
떠나기 며칠 전 도서관에서 빌린 이집트에 대한 책은 읽을 틈도 없어서 가방에 넣고 비행기를 탔다. 빵과 커피 한 잔이 절실했지만 만만한 사람도 없고, 말도 안 통하는 신세라 책을 펴들어 읽기 시작했다. 일본 고고학자가 쓴 《이집트 역사기행》. 나는 슬슬 고무되기 시작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이집트 역사와 문화에 수렁처럼 빨려들었다. 셀 수 없는 왕과 왕비와 자식들에 대한 얘기, 그들의 재상, 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이뤄낸 기원전 2500년경의,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500년에서 5000년 사이에 일군 어마어마한 예술과 문화, 건축 같은 문명이었다. 이집트의 역사와 문명에 대해 단순한 흥미를 넘어서는 열정이 생겼다. 카이로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무렵 이집트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피라미드만큼 부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