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차로 목적한 곳에 정확하게 닿았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일정이 반복되고 있었다. 차창 밖 거리들이 궁금해서 갑갑증이 났다. 차 유리창으로 빼꼼 보는 것과 그 거리를 걷는 것은 천양지차다. 자동차로만 지나다닌 서울의 거리도 내 걸음으로 직접 걸어보면 작은 여행 같은 기분이 든 적이 꽤 많았다. 이집트는 말해 뭐하랴.
그래서 첫날 구경한 시타델 아래 거리에 버스가 멈추고 가이드가 모두 내리라고 할 때 신이 났다. 카이로의 구도심인 듯하다. 일행은 무뚝뚝하게 줄지어 있는 성벽을 왼편에 두고 걷기 시작했다. 어차피 알아듣기 힘든 영어 가이드의 설명을, 걸으면서 차소리와 범벅인 채로 듣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나는 귀는 닫고 눈만 열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일행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녔다.
성벽 위로는 한 무리의 새들이 줄지어 비행한다. 높은 성벽 위로는 언뜻언뜻 가난한 살림살이들이 색색으로 내걸려 있다. 제법 늦은 오후의 하늘 위로 새들이 한가한 춤을 춘다. 그 광경이 아름다워 스마트폰 카메라를 한껏 당겨 사진에 담는다. 성벽의 맞은편은 대조적으로 가난한 살림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사진 속에서는, 낯선 나라의 가난이 이국적인 묘한 아름다움을 내뿜는다. 남의 가난을 구경하는 여행자라는 나의 정체성이 입안의 먼지처럼 까끌거린다.
혼자 노느라 일행과 제법 떨어져 있었는데, 뒤를 보니 우람한 체격의 이집트인 일행이 환하게 웃으며 내 걸음을 재촉한다. 일행의 보디가드였다. 낯선 이집트인이 버스 앞자리에 앉아 있는 걸 보긴 했는데, 그가 보디가드였단 걸 그제야 알았다. 내 늦은 걸음 덕에 일행으로부터 쳐진 그와 나는 짧은 영어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의 이름은 알리였고, 그날의 여행 내내 나는 일행 꽁무니에 있었고, 알리도 그런 나를 웃으며 챙겨주었다. 알리가 나만의 보드가드 같아서 뭔가 호사스러운 기분도 났고, 괜히 더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