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오늘날 대한민국의 헌법에 해당하는 최고의 법전이 있었다. 바로 경국대전인데, 여기 쓰인 조항은 기본적인 국가 운영 원칙이 되었다. 경국대전은 최고 법을 다룬다는 점에서 헌법과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조선의 경국대전을 오늘날의 헌법과 똑같다고 볼 수는 없다.
헌법과 경국대전 모두 국가의 근간을 이루지만 큰 차이가 하나 있다. 경국대전과는 달리 헌법에는 국민의 기본권에 관한 규정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현대의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로 헌법에 국민의 기본권을 명시한다.
국민의 기본권에 관한 규정이 완벽하게 확립된 시기는 근대다.
국가 권력을 제한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의 기원으로는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가 꼽힌다. 영국 왕실이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세금을 부과하자 귀족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하여 나온 문서인데, 정확히 하자면 여기서 권리의 주체는 국민이 아니고 귀족이었다. 추후 헌법 정신이 발달하면서 귀족에게 보장된 권리들이 국민 일반에게로 확대되었다고 보면 된다.
옛날에 성균관 유생들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다.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은 오늘날로 치면 대학생인데, 극중에 어느 유생이 개혁을 외치며 자기에게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대사가 나온다. 역사적 고증을 정확히 해보자면 잘못된 대사다. 왜냐면 조선시대에는 ‘권리’라는 말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리’는 서구의 사상이 동양으로 수입되는 과정에서 일본에 의해 번역돼 들어온 말이다. 따라서 성균관 유생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권리라는 말은 전적으로 근대의 산물이다. 조선시대 백성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는 하나도 없었다. 1948년 해방이 되고, 자유민주주의를 체제로 한 근대국가의 헌법이 만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나라 사람들도 기본권을 향유하게 되었다. 참고로 이런 기본권 보장이 제대로 확립된 시기는 한국판 시민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다. 6월 항쟁의 결과물이 현행 대한민국 헌법이고, 이 헌법을 통해 헌법재판이 실질적으로 도입되었으며 헌법재판소가 운영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