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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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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언론의 횡포와 폭력을 다룬 ‘팸플릿’ 소설

스물일곱 살의 가정관리사 카타리나 블룸은 여성 카니발 축제 때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 남자는 경찰에 쫓기는 범법자였고, 블룸은 언론과 경찰의 감시망에 걸려든다. 경찰 조사 중 언론에 노출된 블룸. 그녀에게 가해진 저널리즘의 융단 폭격은 카타리나 블룸의 개인적 명예를 처참하게 짓밟아버린다. 영리하고 이성적인 블룸, 그녀는 왜 퇴트게스 기자의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으며, 권총을 잡고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했을까? 작가 하인리히 뵐은, 이 작품에서 “신문들이 정말 금수 같은 그들의 ‘무지함’으로” 어떤 일들을 야기하는지 똑똑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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팸플릿인가, 소설인가

 

카타리나 블룸은, 이성적이고 완벽하리만치 성실하며 자긍심 강한 여성이다. 그녀는 카니발 시즌 한 댄스파티에서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괴텐이 강도 용의자로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상태였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고, 자신의 사랑을 진실하게 지키려 했던 블룸은, 괴텐의 도주를 돕고, 이 일로 경찰의 조사를 받는 한편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매력적인 먹잇감을 앞에 둔 하이에나처럼, 선정적 언론은 왜곡․허위보도로 성실하고 완벽한 가정관리사 블룸을, 한순간에 ‘살인범의 정부’ ‘테러리스트의 공조자’ ‘음탕한 공산주의자’로 만들어버린다. 

하인리히 뵐이 1975년에 발표한 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당시 독일의 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생성된 텍스트가 아니다(이에 관해서는 작품해설에서 조금 더 자세히 정리할 생각이다). 뵐의 의도와 비교하는 것처럼 보여 좀 송구스럽지만, 굳이 지금 이 순간, 이 소설을 선택해 함께 읽고 생각해보자고 한 이유 역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2019년 한해는 그야말로 ‘조국 사태’로 불리는 일로 한국사회가 시끌시끌했다. 민정수석에서 물러난 조국이 법무부 장관에 지명된 후 그와 가족, 친지들 관련 의혹이 불거졌다. 조국과 그의 가족들에 관한 시시콜콜한 기사들이 매일매일 쏟아져 나왔다. 전쟁 영화에서 보던, 융단폭격이란 말이 저절로 떠오를 만큼. 의혹의 진상을 법적으로 가리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의혹을 내세워 미디어가 한 사람에게 이렇게 집중포화를 쏟아붓는 것은 비정상적일 뿐만 아니라 검은 의도가 있다는 의심은 당연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