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묻는 행위는 곧잘 절망의 낭떠러지로 이끈다.
“왜 태어난 것인가? 왜 살아야만 하는가? 왜 세계에는 행복한 자가 있고 불행한 자가 있는가? 인생에 의미가 있는가? 왜 살지 않으면 안 되는가?”
《살아야 하는 이유》의 서문을 읽다가 강렬한 고뇌를 담은 뜨거운 물음에 내심 당황했다. 짧은 서문에 담겨진 화두는 한층 근원적이어서 존재적 고뇌가 서린 셰익스피어의 문체와 혁명적인 격문의 잔영이 동시에 느껴졌다. 겨우 달아난 물음을 그가 다시 내 앞에 툭 던져놓은 느낌이었다. 동시에 궁금했다. 왜 갑자기 그가 이처럼 본질적인 물음을 우리 앞에 내놓은 것일까?
전작 <고민하는 힘>에서 만난 강상중은 열정의 지식인이기보다 냉철한 지식인으로 보였다. 책도 책이지만 폐수집상 아들로, 재일교포 2세 나가노 네츠오로 살다가 ‘강상중’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간 이력이 더 강렬하게 남았었다. 하지만 신작은 다른 느낌이었다. 여전히 지성미 넘치지만 그 안에 뜨겁고 묵직한 육성이 배어 있었다. 짐작컨대, 그 이유는 아들의 죽음과 뒤이은 후쿠오카 원전 사고로 단번에 2만명이 사라지는 거대한 죽음을 경험한 까닭인 듯싶다. 그는 심연과도 같은 절망에 맞닥뜨렸고, 절망의 한가운데서 신경증을 앓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아들이 했던, 똑같은 물음에 직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