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냄비의 손잡이는 조금 두렵습니다. 조심한다고 해도 잘 데이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즘이라는 화두는 살짝 피하고 싶은 ‘뜨거운 냄비’와 같습니다. 이와 관련한 사안이 등장하면 사방팔방에서 다양한 관점으로 목소리를 높이기 때문인데요, 최근 유명인들의 여성 혐오 발언도 마찬가지였지요. 한쪽에서는 지나친 여성비하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과도한 마녀사냥이라며 이들을 감싸는 분위기입니다. 이에 대한 시시비비는 논외입니다만, 어찌됐든 인터넷상의 여성 차별 비하 발언이 크게 증가한 것은 사실입니다. 한 국회의원이 받은 자료에 의하면, 인터넷상 차별 비하 표현에 대한 시정 요구가 2011년 4건에서 2014년에는 622건으로 무려 150배가 늘었다는군요.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의 지위를 대변해주는 여러 가지 지표들이 거의 바닥 수준입니다. 남녀 평등 지수의 경우 한국은 세계 117위로 아프리카와 동급 수준이고, 남성 대비 여성의 사회 진출 비율을 아이슬란드와 비교해보면, 임원 승진(한국 12%, 아이슬란드 67%), 의회 진출(한국 19% 아이슬란드 66%), 임금 수준(한국 51%, 아이슬란드 74%)에서 격차가 크게 나타납니다. 한국 여자들이 살기 좋아졌다고들 말하지만 구체적인 지표로 보면 수긍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는 매우 껄끄럽습니다. 그 이유는 번번이 세상의 절반인 여자와 절반인 남자의 감정적 싸움으로 번지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요, 이는 페미니즘에 대한 차분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 엠마 왓슨은 2014년 양성평등을 위한 캠페인 ‘히 포 쉬He for She’의 시작을 알리는 연설에서 “여성의 권리 확보를 위한 싸움이 남성을 증오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페미니즘의 정의는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얘기입니다만, 페미니즘을 둘러싼 갖가지 오해와 편견 탓에 이를 실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차별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목표라고 생각해왔는데 조금 깊이 들여다보니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더군요.
페미니즘, 혹은 여성주의는 여성들이 왜 억압받게 되었는지, 또한 이 억압의 구조를 지속시키는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분석하는 이론임과 동시에, 억압된 여성을 해방시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실천적 운동이기도 합니다. 시대와 사회 상황에 따라 페미니즘이 어떻게 변모해왔는지 살펴보는 한편, 사회, 정치, 경제, 법적으로 반차별적 조치들이 발전해오는 데도 불구하고 여성 평등, 여성 해방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이유가 뭔지 살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