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마음씨가 비단결같이 고운 주인공, 누가 봐도 사악한 악당, 결국에는 주인공이 이기는 권선징악 엔딩을 떠올린다. 그런데 요즘은 디즈니가 악당을 조명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 2014년 개봉한 <말레피센트>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악당인 말레피센트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고 말하니. 거기에 한술 더 떠 말레피센트는 왕자보다 오로라 공주를 아끼고 사랑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크루엘라>의 주인공 크루엘라도 원래는 말레피센트처럼 주인공을 위협하는 악당이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화 초창기 영화인 <101 달마시안>에서 글렌 클로즈가 연기한 크루엘라는 ‘누가 봐도 사악한 악당’의 전형이다. 강아지를 죽여 모피를 만들고 싶어 하고, 자신에게 강아지를 팔지 않겠다고 하는 직원을 해고하고, 동물은 지능이 없다며 미개한 존재로 취급한다. 결혼을 ‘여성의 재능을 사장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며 주인공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윽박지르기도 한다. 이러한 캐릭터성이 글렌 클로즈의 연기력과 더해져 <101 달마시안>의 크루엘라는 완벽한 악당이 되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25년이 지나 다시 등장한 크루엘라는 글렌 클로즈의 크루엘라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2021년의 크루엘라는 키워준 엄마를 죽인 남작 부인에게 복수하겠다는, 관객들이 공감할 만한 동기를 갖고 행동한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다. 영화에서 크루엘라는 ‘버디’라는 개와 각별한 사이다. 그리고 달마시안의 무늬가 마음에 들어도 모피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처럼 크루엘라를 악당으로 만들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사라진 대신, 도무지 감사할 줄 모르는 괴팍한 성격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덕분에 크루엘라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나쁜 인물로 남을 수 있었다.
반면 기존 크루엘라가 가지고 있던 악당으로서의 특징은 남작 부인이라는 캐릭터가 이어받았다. 남작 부인은 부하직원의 디자인을 뺏고, 자신에게 거슬리는 이는 망설이지 않고 죽여버리는 인물이다. 그리고 자아도취에 빠져 자식을 거리낌 없이 버리며 가족의 가치를 부정한다. 크루엘라와 남작 부인과의 싸움에서 관객들은 더 못된 남작 부인 대신, 성격은 나쁘지만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크루엘라를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