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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라디오, 경성 라디오 방송국

1920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라디오 방송.
폭발적인 인기와 기술 발전에 힘입어 곧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그로부터 7년 후 한국에도 라디오 방송국이 세워졌어.
일제 치하에서 탄생해 자유롭게 방송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지만, 라디오는 청취자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우리 문화를 꽃피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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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송 두 언어

“쩨, 오, 디, 케이, 여기는 쩨오디케이(JODK)이올시다. 지금 울리는 종소래(종소리)는 열두 시를 알리는 종소래올시다. 뜅, 땡, 뜅, 땡.”
국내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인 경성 라디오 방송국은 1927년 개국했어. 이때는 일제강점기였기에 채널명이 일본의 국가 부호 ‘JO’를 쓴 ‘JODK’였지. 처음에는 언어도 일본어만 사용했어. 

당시 라디오는 최신 기기라 지금의 TV보다도 훨씬 비싸서, 조선 사람 중 집에 라디오가 있는 사람이 드물었어. 그럼에도 라디오 보급 속도는 어마무시하게 빨랐고, 조선인 청취자도 늘어났어. 라디오는 값도 비쌌지만 방송을 들으려면 등록을 하고 수신료를 내야 했어. 그 때문에 몰래 듣는 사람도 많았단 걸 감안하면 실제 청취자 수는 더욱 많았겠지? 그러다 보니 방송에서도 우리말 비중이 늘어났어. 처음 라디오 방송국이 개국했을 때 우리말 비중은 전체 방송의 30% 정도였지만, 나중에는 50%까지 늘었지.  

물론 한 방송에서 두 언어를 함께 쓰는 건 꽤 골치가 아팠어. 한 문장마다 통역해야 했고 정오를 기준으로 언어를 바꾸는가 하면, ‘홀짝제’처럼 어떤 언어는 홀수 날, 다른 언어는 짝수 날에만 사용해 방송하기도 했지. 방송이 원활하지 않자 자연스럽게 제작자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결국 1933년 경성 방송국의 한국어 채널이 분화돼, 그때부터 한국어 전용 방송이 진행되었어.      

대중문화의 시작, 라디오 스타 

당시 방송으로 송출되는 내용은 뉴스, 만담, 강연, 소설 낭독, 외국어 강좌, 국악, 연주, 라디오 드라마 등이었어. 뉴스라고 해도 취재 기자도 없이 총독부가 전해주는 보도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지. 심지어 뉴스가 아예 없는 날도 있었어. 그럴 땐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뉴스가 없습니다.”라는 멘트를 그대로 내보냈다니, 믿어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