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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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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천문대

별 보기는, 아이였던 나를 만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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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비가 내렸다. 가을은 비와 함께 오는 것 같다. 여름에 대한 미련을 차갑게 식혀주는 비. 비가 그치면 제법 서늘한, 짙은 가을이 온다. 가을은 낭만적이다. 덤덤한 사람들도 가을에는 한번쯤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 멋을 내보고 싶어진다. 서둘러 머플러를 찾는 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어제는 아침에 음식물 쓰레기통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낡고 늘어진 티셔츠, 헐렁한 트레이닝 바지…. 더구나 음식물 쓰레기라니. 후줄근한 실내복을 입고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또 한 손에 ‘음쓰’통을 든 중년의 아주머니. 그게 나다. 출근하는 이들과 맞닥뜨리지 않길 바랐다. 다행히 혼자였다. 

얼른 출근 준비를 해야지, 하면서 현관 쪽으로 향하는데 우산을 받쳐 든 소녀가 보였다. 어깨에 가방을 멘 채 현관문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아이. 초등학교 3학년쯤 됐으려나. 등굣길 친구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그 실루엣이 예뻐서 한참을 바라봤다. 다 자라지 않은, 성장의 시간이 많은, 세상의 모든 ‘어린’ 존재는 특별하게 예쁜 것 같다. 비 닿지 않을 처마에 있어도 되는데 계단참 아래에서 현관문을 정면으로 보고 서 있다. 아이다운 포즈.  

현관문 비번을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잠시 후 문이 열린다. 안에서 자그마한 여자 아이가 뛰어나온다. 후다닥 친구에게 달려간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짧은 순간, 두 아이를 훔쳐본다. 우산 속 아이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 너무나 가볍고 경쾌하다. 반갑고 정겨운 두 아이의 몸짓, 발랄하고 즐겁다. 아이들의 기쁨은 얼마나 단순한가. 내게도 있었지만 지금은 잃어버린 세계. 그 나잇적 내 모습은 사진 속에 있지만, 사진은 그때의 내 마음까지는 담을 수 없다. 

아이처럼 즐겁기, 무엇을 해도 도저히 흉내낼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즐거움을 그날, 쏟아지는 별을 본 친구의 얼굴에서 뜻하지 않게 발견했다. 별을 보는 일은, 아이였던 자신을 만나는 일임을 그날 알았다.   

일요일 오후의 소풍, 일몰을 보러 조경철천문대로